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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변신 - 카프카

by librovely 2007.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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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신                                         카프카       2004'     좋은생각

 

 

 

 [동기]

 

강모림의 블로그에서 프란츠 카프카 이야기를 보았다.

강모림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카프카

글쓰는 사람이라면 카프카의 변신을 꼭 읽어보아야 한다거나

카프카에 너무 푹 빠지면 안된다는 말이...

꼭 읽어보고 빠져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서 두달 전에 구입한 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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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고기에게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런식으로

적용이 된다. 일단 이 책은 내 책이니까... 언제 읽든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었다.

대출받은 책은 기간 내에 안 읽으면 눈물겹지만 반납을 해야 한다.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은 연장이 안된다.) 그래서 대출받은 책을

읽기도 바빠서 이 책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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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5쪽 정도 읽고는 사실 아껴 읽어야겠다는 요상한 심리가

이유이기도 하다. 뭔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곰곰히 곱씹어가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근데 그런 계획과는 다르게 또 가장 집중 안되는 책읽는 방법인

대중교통수단 안에서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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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카프카의 단편이 몇 편 실려있는데 일단 변신만 읽었고

이것만 우선 독후감(?)을 써야겠다. 이거 하나로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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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간단하다.

대강의 내용은 이미 <명작에게 길을 묻다>에서 읽은 상태였다.

그러고보니 가장 먼저 변신을 알게된 것이 저 책에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내 가족 중 하나가 징그런 벌레가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변신)

저 글귀를 내가 메모해두었구나...

<명작에게 길을 묻다>의 목차에서 변신은 이렇게 나온다.

내가 당신 곁에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카프카의 「변신」

 

 

 


 

 [줄거리]

 

 

변신은 주인공인 그레고르라는 남자가 잠에서 깨어보니 이상한

벌레로 변해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레고르는 원래 회사에

다니면서 가족부양을 책임진 가정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었다.

집안을 말아먹은(?) 부모님을 원망하지도, 자신의 고단한 삶을

탓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가족에 힘이되며 또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주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삶의 이유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벌레로 변해있는 것이다.

그는 벌레로 변한 너무나 끔찍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출장가는 일에 대한 걱정이다.  그는 너무 담담히 회사에 대한

걱정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 직원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재촉하기 시작하고 가족도 덩달아 방문을 두드리며 닦달한다.  

(조금 시간이 늦자 바로 찾아와 수선을 떠는 회사 관련자를 보면

 그가 평소에 얼마나 고단한 생활을 했을지 예상할 수 있다.)

 

 

방문 밖에서는 계속 그레고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방문 안에서는 그레고르가 일어나려고 발버둥치면서 대답을

하는데 그의 몸은 이미 벌레의 형상이며 목소리까지 벌레의

그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눈치빠른 여동생은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며 의사를 부르려는 부모를 말리기

시작한다.

 

 

그레고르는 결국 이상한 액체가 몸에서 분비되는 상태에 이르고

입으로 열쇠를 물어서 문을 열게된다. 그레고르를 본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는 주먹을 쥐고 동생은 울고 회사 책임이사는

뒷걸음치며 도망가버린다. 그레고르는 그냥 가버린 책임이사에게

자신을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한다. 영리한 동생이라도 대신 가서 여자를 좋아하는 책임이사를

설득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가족만 남은 상태에서 어머니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얼굴을 빼고

있고 아버지는 지팡이를 든다. 맞지 않기 위해 급하게 방으로 되돌

아가다가 그레고르는 상처를 입는다. 그런 그레고르에게 아버지는

지팡이질을 하여 방으로 밀어넣고는 방문을 닫아버린다.

 

 

그레고르는 방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의 방에는 오직 여동생만이 들어와서 가끔 청소를 해주고

음식을 넣어 준다. 동생이 들어오면 그레고르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쇼파 아래에 숨어있는다. 가족은 그레고르가 자신

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레고르는 방문에 달라

붙어서 가족의 대화를 엿듣고는 한다. 그레고르는 가족이 자신의

벌이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하고 여동생의 음악

학교 문제를 듣고는 자신이 보내줄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이야기

한다.

 

 

어느날 여동생은 그레고르가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게 가구를

치워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 때 여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도 거들어 주려고 한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치우는 것을 막기 위해 모습을 나타내는데 어머니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 쓰러지고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져 등에 박히게 만든다. 죽이려 달려드는 아버지에게

그레고르는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아버지는 수위일을 하며 동생은 서빙을 하며 

그레고르에게 의지하던 때와 다르게 가난하지만 나름의 삶을

새롭게 영위해 간다. 그레고르는 방에서 항상 가족을 다시 부양

하길 꿈꾼다. 그러나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은 그레고르에게

점점 소홀해진다.

 

 

그레고르의 집에 나이든 하녀가 들어오고 하숙인이 들어온다.

물론 그레고르는 철저히 숨겨지지만 나이든 하녀는 그레고르를

보게되고 여동생이 아닌 하녀가 그레고르를 그나마 보살펴주기

시작한다. 하숙인이 들어오자 깔끔한 그들의 취향을 배려하여

온갖 잡동사니를 그레고르의 방에 쌓아놓기 시작한다.

 

 

어느날 그레고르의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하숙인들 앞에서

연주하게 되고 하숙인들은 별 감흥을 못 느끼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레고르는 여동생에게 자신의 방으로 와서 연주해 주도록

부탁하고는 음악학교에 보내주겠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는

마음에 사람들 사이로 전진한다. 그렇게 하숙인들 앞에 몸을

내보이게 되고 하숙인들은 놀라기보다는 이를 빌미로 자신들은

더이상 이 집에 머물지 않겠으며 머문 비용도 낼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일을 계기로 가족은 그레고르를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로 인해 가족은 영원히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리곤 내쫓아야 한다고 말한다

방으로 힘겹게 그레고르가 되돌아가자 여동생을 재빨리 달려와서

문을 잠근다.

 

 

그레고르는 어두운 방에서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낀다.

박혀있는 사과의 통증도 옅어져 간다.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그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하녀 할머니는 그레고르의 방으로 빗자루를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레고르를 빗자루로 건드려 보는데 그는 반응이

없다. 하녀는 이 사실을 알리고 가족은 그레고르가 죽었음에 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린다.

 

 

그레고르의 시체(?)를 이미 치웠다고 말하는 할머니 하녀를

가족은 밤에 내보내기로 하고 조용히 각자의 일터에 제출할

결근계를 쓰고는 전차를 타고 행복감에 도취되어 잠시 떠난다.

다시 생기를 찾은 딸의 신랑감을 찾을 계획과 현재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음을 깨닫고 가족은 기쁨을 만끽한다.

 

 


 

 [생각]

 

 

기본적인 사건은 매우 간단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세부적인

말이나 행동들은 상당히 복잡한 느낌이 든다.

짧게 요약한다고 쓴건데 상당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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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참착잡했다.

그레고르가 너무 불쌍했다.  짐처럼 느껴질 가족을 홀로 힘들게

부양하면서도... 자신의 꿈이나 이상과는 별반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을 쪼는듯한 회사에 다니면서도 불평보다는 안 짤리기위해

발버둥치는 그레고르... 그러면서 부모님의 빚을 갚아나가고

사랑하는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낸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고

살아온 그레고르... 그런 그레고르를 가족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그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망가질 인생에 대해 비탄에 잠겨야 마땅

하지만 그레고르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그는 우선 회사에서

잘리게 된다는 현실과 그로 인한 가족의 생계만이 떠오를 뿐이다.

가족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를 가여워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그를 내보이지 않고 감추어 놓는다.

남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그레고르에 대한 사랑보다 크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처음에는 감추어놓고 돌봐주기는 한다. 여동생이...

그레고르의 부모님은 보통 생각하는 부모와는 좀 다르다.

아들이 벌레로 변한 것이 징그럽다는 생각을 할 뿐 측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들의 걱정은 그레고르의 삶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신들의 앞길을 막는 그레고르에 대한 걱정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레고르는 계속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 방에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그런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도 가족 부양에 대한

의지 때문이다. 자신의 징그러운 모습을 보고 기절하는 어머니,

점점 소홀히 돌보다가 나중에 원망까지 하기 시작하는 여동생,

볼 때마다 죽이려 달려들어서 도망가기 바쁘게 만드는 아버지...

이런 가족이지만 그는 그들을 전혀 원망하지 않고 오로지 진심으로

가여워하며 걱정을 할 뿐이다.

 

 

그러던 그레고르가 걱정을 털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가족들이

그레고르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비통해하는

이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이런 반응에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마음 편하게 죽을 자유를...그리고 가족보다 더 스스로가 죽어야

겠다는 절실한 마음을 갖게되고 정말로 죽음에 이른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상황이 몇가지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몹쓸 병에 걸린 상황...

가족을 부양하며 열심히 살다가 갑자기 불치병에 걸린다면...

그레고르는 아무 잘못도 없이 원인도 모르게 어느날 벌레로

변신해있었다.

 

 

불치병에 걸리는 그들도 물론 무슨 원인이 있을 수있겠지만

대부분이유도 모른채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갑자기 변한 자신의 상황... 자기 스스로에 대한 연민도 물론

강하게느낄 것이지만 그 뿐만아니라 특히나 그레고르처럼 가족을

부양하던 위치였다면, 그리고 형편이 좋지 않다면... 병에 걸린

환자는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과 가족의 생계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비참하다...)

 

 

그리고 처음에는 병에 걸린 자를 걱정하고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마음아파하던 가족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차츰

환자보다는 자신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나중에는 가족이 아니라

짐으로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정도에는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누구나 0.000001% 라도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는 못 할 것이다..)

 

 

하여튼 이런 갑작스런 병마가 방문하는 것에서 벌레로 변하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고.... 그 다음 드는 생각은...

이건 좀 위험한 발상이긴 하지만... 내가 불효자식이라 이딴 생각이

떠오른건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그 다음 떠오른 상황은...

부모

노부모

 

 

 

부모는 젊을 때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아버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지상 최대의 고통이라는 산고를 겪어서 출산을 하고

남이라면 차마 쳐다보기도 역겨울 기저귀를 빨며 자녀를 키운다.

(너무 옛날 이야기인가? 요즘은 부모도 자신들의 인생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부끼리만 여행을 떠나버리기도 하고 기저귀도 그냥

1회용을 사용하고 아이도 사람을 사서 보게 하고 출산시에도 무통

분만을 한다고 해야 시대에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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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애지중지 당신의 삶을 희생하며 자녀를 키우다보면

그들은 어느새 노안과 각종 신경통에 시달리는 힘없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자녀는 장성하여 자신들의 삶을 살며 부모의 관심을

귀찮아 하며 각자의 짝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게 된다.

부모를 모시게 되는 문제에 맞딱드리게 되면 그 문제를 갖고

부부 혹은 형제끼리 심하게 싸워대기 시작한다.

부모가 무슨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함께 살기에는 끔찍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은 다들 분가하니까 이것도 시대착오적인발상인가?)

 

 

너무 지나친 생각들을 쓴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물론 나는 절대 저런 인간이 아니라고 오버하며 주장하고 싶다.

(강한 부정은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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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야...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다만 명절에 유독 뉴스를 장식하는 부모 모시기를 주제로 한

형제간의 싸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일거다...

그런 뉴스를 보면 참 부모가 저런 상황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실 홀로 사는 독거 노인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혼자 살지? 한참 파릇파릇한 젊은이가

혼자 사는 것과 노인이 혼자 사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어릴 때,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엄마가 필요할 때... 엄마 없이는

정상적인 생존이 불가능한 그 때에는 엄마가 눈에 안 보이면 아이는

죽어라 울어댄다... 좀 커서는 엄마가 시장이라도 갈려고 하면

나를 버리지 말고 아무데나 제발 데리고 다니라고 바닥에 앉아서

대성통곡을 한다. (이건 내 경험이네...) 그러다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힘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부모에 대한 애틋함보다는 냉담함

이 앞서고 뭔가 내세울만한 모습이 아닌 경우 타인 앞에 소개하기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면 늙은 부모는 보기 흉한

짐일 뿐이다. (이건 내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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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이런 경우 말고도카프카의 변신과 유사한 모습은

사방에서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물론 그 정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조건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 것일까?가장 무조건적인 관계인 가족에서도

저런 흉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니 다른 인간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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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당연히 필요없어지면 내동댕이 친다....

 

 

친구...

사람 중에는 친구를 가려 사귀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친구는 자신과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사귀게 되어 있지만

그 기준이 학벌이나 아니면 직업...사회적인 지위로 사람을 평가

해서 자신에게 득이 될 사람만 유지하고 아닌 사람은 폐기처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나? 나는 내가 남에게 폐기처분 안당하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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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직장에 다닐 때는 어울리다가 친구의 사업이 망하거나

아니면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집안이 망해서 돈이 없어지거나

하여튼 상황이 나빠진 친구와 연락을 슬며시 끊는 사람이 내가

알기로는 많다...(아닌가?)

 

 

연인....

처음 사귈 때는 무조건 좋다고 하다가...

조건을 보고 헤어지는 경우

이건 뭐 처음에는 순수했으니 그나마 낫다...

조건이 마음에 들어 만나기 시작하여 결혼을 생각했다가

상대방의 신변에 변화가 생기면 바로 헤어져 버리는 것...

뭐... 이것도 용서가 된다...

 

 

그렇다면 뭐?

이것저것 조건을 재보고는 이 남자가 나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

해줄수 있겠다는 결론으로 결혼을 하고 마음껏 그로 인한 여유를

누리다가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거나 사업이 망한 경우 이혼 도장을

요구하는 경우.... 뭐 이런 경우 남자는 일순간에 여자에게 벌레로

변신한 것이 아닐까?

(너는 그럼 조건 안 보냐고 묻는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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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식은 땀....

 뭐... 나는 내 조건도 별로니까 남들보다는 훨씬 안 본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장하겠다...)

 

 

글을 쓴 내용들이 참끔찍하다....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참 안 좋아졌다....사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그것도 아주 많이...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반성도 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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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모습이 그 정도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존재하지 않을까?

예전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을 때의 심리적인 괴로움과

비슷한 감정이 이 책을 통해서 또 느껴졌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겠지만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던 타인을

벌레로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벌레가 되는

순간이 있다. 누구나... 아니라고 하겠지만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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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주 조금씩 읽고 있는 책에서 봤던 말이 생각난다.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인데 몸담고 있는 곳에서 빌린 책이라

 정해진기한이 없는 앞서말한 잡은 고기라서 긴장감이 없어서

 세월아내월아~ 슬슬 읽고 있는 중...)

 

피카소-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다.

어슐라 르귄- 소설가들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과 장소, 일어난

                   적이 없었던 사건들을 우회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꾸며낸다. 

                     작가들이 하는 거짓말의 연속은 갖가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카프카와 카뮈가 말하려던 진실이 내가 소설에서 발견한 진실과

일치하는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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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감추고 싶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던 속물적인 근성이

드러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고 속상하고 그렇다...

저런 진실이라면 그냥 지각하지 않고 사는게 속 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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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흉칙한 글을 써 놓은 것 같아서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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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변신>에 대한 전문가 혹은 다른 사람의 글을 전혀 읽어

보지 않았다. 영화건 소설이건 아무 사전 지식 없이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 이젠 다른 사람이 평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국문과를 나온 지인(ㅎㅎ)에게 변신을 읽고 도대체 무엇을 느껴야

하는거냐고 질문을 해 보았다... 그러자 읽었다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지 않고는 카프카의 작품은 어렵다고...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평도 많이 다르다고만 이야기 해 주었다...

갑자기 두려워진다...

 

 

내가 발견해 낸 진실이 카프카의 의도와 다른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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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저런 생각들은 모두 비비꼬인 심사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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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다....나는 그렇지 않다...난 긍정적이다...

  난 남을 벌레로안 본다... 난 그렇게 치사하지 않다...

  궁시렁 궁시렁....

  강한 부정은 긍정??? 아 이 말 누가 만든거야....TT )

 

 

 

이 책을 읽으니 마냥 멀쩡해 보이던 나 스스로가 벌레처럼 여겨진다

이 책이 나를 벌레로 변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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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