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타는 사람도 있고 가을을 타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중간한 때에 이상한 기분으로 처박히곤 한다
사실 일년내내 그렇다
일단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허무함
예전에는 그래도 읽을 책을 쌓아놓고 앉아있으면 두근두근하고
읽기 시작하면 세상 만사 다 잊고 그냥 읽는 재미에 푹 빠져들곤 했는데
어쩐지 책 읽기도 예전같지가 않다...내가 요새 너무 가벼운 책만 읽어서 그런가
며칠 전 통화한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무얼해도 재미가 없고 더 심각한 건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조차 안 든다는 것이야...
왜 그러는데? 라며 걱정스런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나는 아마 너 이상으로 그럴거야...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무기력하고 허한 감정에서 멍~하게 있고
또 직장에 가면 잡다하기 짝이 없는 일들을 머리 구석 구석에 열어두고는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내가 일을 못하는건가 아님 내가 일이 많은건가 왜 이리 여유가 없지 요즘..
난 갑자기 일 시키는 거 정말 싫다...왜냐면 다 계획이란 것이 있으니까...
미리 알려준다면 그 일을 할 시간을 마련해둘텐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계획만 있고 남의 계획은 없다...
오늘 누군가가 출장가기 직전에 일을 시켰다...나가야 한다고 하는데도...일단 네~라고 대답한 후 짜증이
밀려들었고 아랫층에 있을거라고 생각했기에 아~짜증나...지금 나가야 하는데...라고 나름 큰 소리로 말했는데
음...다 들리고도 남을 위치에 일 시킨 사람이 서 있었고 놀라서 눈치를 보니 마음이 제대로 상했는지 영 나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으...평소에 나름 착한척하며 대했던 분인데...망했다....
아무리 고치려 들어도 안 고쳐지는 소심함...으로 인해 출장길에 나서는 내내 마음이 복잡...
그러면서도 빨리 안 가면 빈 자리가 없다는 조급함에 정신이 그야말로 산만...심난...
가보니 역시 자리가 없고 엘리베이터 타고 지하로 보통 때라면 갔을텐데 이상하게 가기 싫어져서 돌아가려 하니
동료가 굳이 내려가보자고...그래서 그냥 가보기로...진탕 수다를 떨며 엘리베이터에 탔고 지하에 도착했고 사람용 엘리베이터 문이 도착 후 열릴 시간 정도만 기다린 후 후진...내 눈은 분명 거울로 뒤를 보고 있었는데 눈만 보고 있지 뇌는 멈췄던 모양...열리는 중인 엘리베이터문에 차 뒤가 쓸렸다....패닉상태...어떻게 이런 바보같은 짓을...미쳤어 미쳤어를 되뇌이며 구석자리 주차를 시도하다가 이번에는 두 눈 멀쩡히 뜨고는 앞 귀퉁이를 벽에 비비며 미쳤어 미쳤어를 바로 증명하였다...주차하다가 긁어댄 일이 없었는데...이 상태로 운전하면 하루종일 끊임없이 골고루 긁어댈 자신이...
지난 주부터 참 일이 많이 꼬인다....
지난 주에도 아주 속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젠 나도 다 컸으니 아니 크다못해 늙어가니 나쁜 일은 굳이
엄마한테 말해서 속상하게 해드리지 말자고 다짐하곤 그 일은 정말로 혼자 꾸역꾸역 견뎌냈다...
아...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역겹다....난 누구보다도 속물인 나 스스로에게 단련되어서 어지간한 인간에게는
별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데 그 일은 상당히 고역이었다...인간이란 존재가 지긋지긋해...가 머리에 가득했었다
그런데 오늘 또 일이 생기자 바로 전화로 어쩌고 저쩌고...엄마의 반응은 나와 다르게 무덤덤...항상 무덤덤...
그랬어? 그럼 ~~게 해...라는 지극히 당연한 해결책 제시...
하여튼 힘든 하루...
그런데 이상한 건 일이 꼬이면 사는 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막상 사는 것이 힘들면 허무하다 어떻다는 지경까지 생각이 이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는 인생이 적당히 꼬이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든다
벌써 올 해는 다 가고 있고
오늘 하루도 다 가고 있고
내 정신도 다 가고 있다
오늘은 오늘답게 구토를 읽으며 마감해야겠다
피곤하다
허무하지 않으면 피곤하다...
둘 중 하나...
지금 같아선 허무한 게 나은거 같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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