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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우리가 녹는 온도 - 정이현

by librovely 2019. 9. 3.

 

 

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2018                  

 

달콤한 나의 도시... 한 10여년 전에 인기가 많았던...당시에 되게 세련된 느낌을 줬던...

그래서 아마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그랬던...달콤한 나의 도시 작가 정이현

물론 나는 이 책 말고 낭만적 사랑과 그 다음은 뭐더라? 하여튼 조금은 더 날카로운 내용의

그 책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더라 결혼을 했고 그 다음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쓴

책은 그냥 그랬던 것 같고 그 뒤로는 뭐...ㅋㅋㅋ 그랬는데..하여튼 별 기대 없이 뽑아든 책

출판사도 비교적 가벼운 책 위주로 내는 것 같은 달 출판사네...나쁜 의미의 말은 아니고...하여튼

 

재미있게 읽었다 단편들이고 소설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대한 정이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쓰여 있는데... 가벼운 글들이지만 역시 정이현은 정이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함... 

 

첫 내용...강아지 시추의 죽음이 나온 첫 글이 별 내용이 없음에도 나에게는 가장 많은 내용처럼 느껴졌다

사슴아 안녕

 

 

 

 

 

 

 

 

은우가 좋아하는 것은 책 읽기 생각하기 그림 그리기 퍼즐 맞추기 같은 것이었다

모두 혼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모든 순간에 사슴이가 함께 있었다

사슴이는 시추였다

 

하얀색이니까 설탕으로 했으면 좋겠어

강아지 이름은 태호가 벌써 지었어

기린이야

기이리인?

김연수 <깊은 밤 기린이의 말>

 

소설 속 태호는 기린이라는 말에만 반응을 보여 몰티즈의 이름이 기린이로 정해졌다

어린 기린은 사실 눈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였다

은우는 밤새 생각하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어리고 늙은 동물들과 그들의 검고 약하고 동그란 눈망울에 대하여

인간의 언어로는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대하여

 

남은 것을 붙잡고 은우는 울었다

사랑하는 존재의 애도 속에서 개의 영혼은 지상을 떠났다

은우는 울면서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나의 세계가 암흑 속에 갇혔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나는 조금은 할말이 있다

괜찮아 스무 살에 알던 친구는 늘 그렇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도 어김없이 괜찮다고 말했다

잘못했던 일들의 세부를 지금은 다 잊었지만 그래도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가 원래 화를 못 내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스무 살 때 알았던 그와는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게 되었다

물론 내 쪽에서 볼 때 갑자기였다

무슨 일인가로 의견 충돌이 있고 난 뒤였다

웬일로 그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패턴이 깨졌다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다

어떤 끝은 그토록 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이별은 크고 작은 후유증을 남긴다

그 뒤로 나는 어떤 관계든 매사에 괜찮다고 하는 사람 곁에는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 곁에서 마음을 푹 놓아버릴까봐 마음을 푹 놔버리곤 부지불식간에 상대가 괜찮지 않은

일들을 하게 될까봐 먼저 몸을 사리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여행스타일이 있다

나는 여행 전에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나면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날이 궂으면 숙소 옆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하는 편이 더 행복했다

 

상대방이 싫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그 옆의 내가 싫어서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도 생각지 못하던 방향으로 변해갈 때 우리는 이별을 결심한다

누구도 자신과는 이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이별한다

가장 가까운 옆 사람과 헤어지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우정이 존재할 수 없는 관계란 없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도 동물과 식물 사이에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우정은 깃든다

 

늘 새기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었다면 모두 백 개의 텍스트가 된다는 말

다들 따로따로 읽는다 따로따로 느낀다 개별적으로 살고 개별적으로 사랑한다

이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별에 이르는 과정 이별을 결심하거나 받아들이는 마음 이별과 대결하는 태도도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기어코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 작게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