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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작은 것이 아름답다 - E. F. 슈마허 Small is Beautiful

by librovely 2008.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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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E. F. 슈마허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



제목 위에 쓰여진 문구.
인간 중심 경제학.
요즘 자주 들락거리는 블로그 이기에 대뜸 88만원세대 저자 우석훈 생각이 났다.


작년 홍대 북페스티발에서 반값에 구입한 책이다. 범우사상신서 시리즈 35번...
이 시리즈 목록의 책을 다 읽으면 세상이 좀 잘 보이기 시작할까?
내 책이라서 좋은 점은 딱 하나...밑줄을 그어가며 읽을 수 있다.
굳이 발췌를 쓰지 않아도 된다?


경제...
경제가 뭔지...요즘 경제 대통령?이 부임하고 나서 이상하게도 삶이 불안정해진 느낌이 든다.
경제란 그런 것인가요? 그런거 아니란다. 슈마허가 그랬다. 그런거 아니라고...그리고 왜 경제를 살린다는
요즘 더 불안함을 느끼게 된건지에 대한 답도 나와있다.  내가 이런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이
이런 책을 읽으셔야 할텐데...물론 읽었을 것이다. 좋은 대학도 나오셨고...문제는? 알면 뭐하냐...겠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느냐의 문제이겠지..


책의 부제로 붙은 인간중심 경제학...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소리이다. 경제학의 중심에 인간이 아닌 무엇이
들어간단 말인가...근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니까...이런 책도 쓰여지게 된 것이겠지....
이 책은 1970년대 초반에 쓰여진 책이다. 에리히 프롬과 비슷한 시기이구나... 에리히 프롬의 책이 그러하듯이
슈마허의 책도 그 내용이 요즘 시대에도 아주 정확히 들어 맞는다...아니 요즘을 위해 미리 쓰여진 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타겟으로 쓴 느낌마저 든다...위대한 사상서란 이런거겠지...
고전이 어느 시대에든 의미가 있듯이 위대한 사상서 또한 시공간을 뛰어넘어 적용이 가능한...


슈마허의 주장도 에리히 프롬의 그것과 일치한다. 다만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기계 부속품화...비인간화...
수단화...(다 같은 말이지만..ㅎㅎ)소비에 이끌려 진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문제 등을 다루었다면
슈머허는 경제학자라서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일단 에리히 프롬이 말한 저런 문제들이 팽배함을 지적한 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 해결책은 이 책의 제목이 말해준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란...
기업을 의미한다. 일정규모 이상으로 기업이 커지면 조직은 타락하게 되고 의사소통도 노동과 소득분배도
단절되어 버린다는 것... 슈마허는 기업에서 나아가 나라마저도 거대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찌보면 나라라는 것도 각 나라의 기업과 국민을 직원으로 삼은 거대 조직으로도 볼 수 있이 않은가?


초반부에서 슈마허는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을 지적하고 원자력 이용의 위험성을 제기한다...맞다...
나같은 범인은 나 하나 살아가는 것에만 전전긍긍하기에 환경이고 후손이고 생각을 안한다...
하지만 자원의 한정성은 당연한 일... 최선은 자원 절약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그리고 무공해 연료 개발..


슈마허는 국민총생산 혹은 경제성장률이라는 수치의 위험성에 대해 말한다.
그 수치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경제 수치에는 반드시 가치판단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 부가 골고루 분배된 것인가... 노동한 사람에게 정당하게 그 대가가 주어졌는가...고용률은 어떤가...
슈마허는 특히 완전고용을 매우 강조한다. 그것도 안정적인 고용을...비정규직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
큰 의미가 있을 내용들...


그렇다. 나라가 부자면 뭐하는가... 내가 실업상태라면... 니가 비정규직으로 혹은 실업으로 희생을 해야
나라가 혹은 기업이 망하지 않고 돌아간다라는 식의 공포감 주입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슈마허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고용인 것 같다. 일자리 창출...


지하철이 생각났다...지하철 표파는 일을 예전에는 사람 두 명이서 보통 했었는데...요즘은 한 명이 하거나
아니면 아예 기계만 있고 아무도 자리에 없는 경우도 있다...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있던 일자리마저
없애는...그 이익은 누구에게 가는가? 일자리 줄임으로 나라가 좀 더 부유해졌다고 해도 해직당한 직원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그 개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데...


경제 성장의 근원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행복한 삶이다.
그런데 경제 성장을 위해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면....물론 더 행복해질 인간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소수이고...너무 지독하게 이기적인 짓....


슈마허는 거대국가가 미개발 국가에 원조를 빌미로 (뭐 별별 가지 이유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던데...) 돕는 척
하면서 착취하는 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리고 진정한 원조는 물질적인 원조가 아니라는....
오히려 그들은 원조를 해준다면서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라고 느껴진다...


교육에 대해서도....
슈마허는 현대의 비극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그 기술의 방향성을 부여해 줄 올바른 사상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며 여기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논한다. 그러나 요즘 교육은 특권 계층의 패스포트가 되어 버렸고
그렇게 된 사회일수록 더욱 특권계층에게 유리한 그들만의 교육제도를 만들고 싶어한다고 이야기한다.
딱 요즘 우리나라 교육의 방향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상당히 씁쓸했다...


불로소득...이것도 슈마허는 아주 싫어한다.
일을 한 사람에게 소득이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그냥 생각해 보아도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그가 자영업자의 일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는 그 나름의 경영의 수고로 돈을 버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 때도 그 소득을 혼자 독점하면 안됨은 당연한 전제조건이고...다만 그가 문제시 하는 것은....
돈이 돈을 버는 문제...남의 근로에 빌붙어서 소득을 얻는....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을 슈마허가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내용의 상당부분이 함께 읽고 있던 톨스토이의 책과 너무 많이 통해서 신기했다...
그리고 불교 내용도 나오고 성경 내용도 나온다....
정말 다들 통한다...위대한 사상가들끼리....왜 그럴까? 이게 답이니까 그렇겠지...진리이니까...?



개인이, 기업이, 그리고 나라가 더 나아가 세계의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말해주는 책이다.
경제학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필독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같은 사람도 읽어야 할 책이다...
누구나 이런 책을 소설책 읽듯이 읽어야 할 것 같다...남의 이야기가 아니다...경제학 책이지만 나와 밀접한
내용들이다. 경제 활동을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이니 얼마나 중요한가?


책은 경제학 책이지만 결국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누구나 읽어야겠지...
유럽의 복지국가이자 선진국들 국민은 이런 책을 많이 읽을까?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슈마허는 경제학자이지만 책만 쓰고 앉아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였다고 한다.
그렇다...지식인이 할 일은 이런 것이 아닐지...실천하는 지식인? 예전에는 전쟁이 나면 가진자들이 먼저
앞장서서 싸웠듯이 요즘은 아는자들이 먼저 나서서 실천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나는 진중권과 우석훈이 정말 존경스럽다...내가 몰라서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이 있겠지?
사실 나는 나라에 대한 믿음이, 높으신 분들을 볼 때보다는 이런 지식인들을 볼 때 훨씬 강하게 생긴다...
이런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겠어? 뭐 이런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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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H. 토니
일반 사람들도 영혼을 지니고 있는 이상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져도 제도에 상처받은 자존심이나
빼앗긴 자유는 보상될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가 무시되고 있다.




제1부 현대세계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대한 오류의 하나는 생산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는 생각이다.


자본의 대부분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수십억 톤의 화석연료 대신 원자력을 사용하라는 제안은 연료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가공스러운 규모의
환경문제 또는 생태계 문제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리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인간성이란 국민총생산GNP 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
아마 그것은 원래 측정할 수 없는 것이며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상실되었을 때 나타나는 징후일 뿐이다.


여가 시간의 즐거움에 덧없는 기대를 걸고 오로지 임금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민총생산은 급속히 물어날 것이다. 인간은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없으며 사람들은 더욱더 좌절감이나
소외감, 불안감 등에 사로잡히게 된다.


올바른 노동관이 필요하다. 가족 다음으로 사회의 진정한 기초를 이루는 것은 일과 그것을 통한 인간관계다.
그 기초가 건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회가 건전할 수 있겠는가


현대인의 마음이 탐욕 그리고 질투심에 의해 정복되어 있지 않다면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는데도 미치광이같은
경제주의가 횡행하거나 가장 풍요로운 사회가 가장 사정없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리가 없다.


다음과 같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
탐욕과 질투심을 약화시키고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지 않도록 하며 현재의 필수품을 점검하여 그 수를 줄이거나
질을 간소화시키도록 한다.


순수히 수량적인 방법에 의해 어느 나라의 국민총생산이 5퍼센트 신장되었음이 실증되었는데 그 신장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하고 질문하면 계량경제학자가 되어 버린 경제학자는 대답을 피한다.


불교 경제학의 기조는 간소와 비폭력이다.


세계에서 가장 풍족한 나라들을 꼽아 보면 대부분이 작은 나라들이며
큰 나라들은 대부분이 매우 가난함을 알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정책이라는 것은 현재 풍족한 사람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고 권력이 있는 사람의 권력을 더 강화
시키는 방향으로밖에는 나갈 수 없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경제학이 국민소득이나 성장률, 자본산출비율, 투입산출분석, 노동의 이동성, 자본축적 따위의 큰 추상개념을
초월하여 빈곤이나 좌절, 소외, 절망, 사회 질서의 분해, 범죄, 현실도피, 스트레스, 혼잡, 추악함 및 정신의
사멸 따위의 현실 모습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러한 경제학은 버리고 새로이 시작해야 할 것이다.
새로이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시대의 징후는 이미 충분히 나와 있지 않은가.





제2부 자원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자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음악이 아닌 것처럼 그 기술적 지식은 문화가 아니다.
교육이 무엇보다도 먼저 가치관을 즉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관념을 전해 주어야 한다.


큰 관념 - 보편적이며 복잡한 관념 - 은 바꾸기가 용이하지 않다.
실은 그러한 관념을 의식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사고의 도구이지 사고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은 세상의 의미를 밝히고 인생의 의의를 사람들에게 납득시켜 줄 관념 또는 사상이다.


오르테가
현대의 정상 또는 현대 사상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귀착되는 곳은 허무의 심연이다


공자
네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아무리 전문화되어 있어도 하나의 중심과 결부되어 있다.
인간을 움직일 힘을 진정으로 갖고 있는 관념, 사상
바꿔 말하면 형성하고 있는 것은 형이상학과 윤리학이며 사실의 세계를 초월한 사상이다.
사상은 사실의 세계를 초월하고는 있지만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교육은 인류가 지닌 최대의 자원이라는 지위에서 전락하여
'최고의 것의 부패는 최악'이라는 원칙에 따라 파괴의 도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어느 사회의 토지 이용 방식을 알면 그 사회의 장래를 꽤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다.


루이스 허버
현대의 대도시 주민은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무관심해지고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세계 인구의 5.6 퍼센트밖에 안 되는 미국인이 세계의 1차 자원 중 40퍼센트 정도를 자국의 공업을 위해
필요로 하고 있다.


원자력
인류의 미래에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인간 생명에 영향을 미친다는데도 금방 이익이 나오느냐 하는 점만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두 명의 넝마주이가 값을 흥정하고 있는 것과 같은 꼴이다.
방사능 오염은 그 해독의 심각성에 있어 지금까지의 어떤 오염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느 사회가 향수하는 여가餘暇의 양은 그 사회가 사용하고 있는 생력省力 기계의 양에 반비례한다.


정치라는 것이 전문가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중대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정치의 중심은 경제이며 경제의 중심은 기술이다
정치를 전문가에게 맡길 수 없다면 경제나 기술도 마찬가지다.





제3부 제3세계

이중경제
한쪽 집단의 최하층 사람조차도 다른 쪽 집단의 가장 부유한 사람의 수입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매일 사용하고
있는 식의 불균형 상태


현대의 과학자
전능한 신 조차도 복잡한 것을 창조할 힘을 갖추고 있지 않다.
복잡한 것은 진화가 낳은 것이라는 말이다.


빈곤의 주요한 원인은 비물질적인 것, 즉 교육이나 조직, 규율 등의 결함인 것이다.
개발은 물질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그 교육이나 조직, 규율 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세 가지가 결여되어 있으면 모든 자원이 살아나지 않는다.


교육에 비약은 없다. 교육이라는 것은 매우 미묘하고 더딘 과정이다. 조직에도 비약은 없다. 규율도 마찬가지다.


개발노력의 적어도 상당부분을 대도시가 아니라 농촌과 소도시에 직접 기울이고 거기서 농공업 구조를 만들
어야 한다.


첫째 목표는 실업자나 반실업자에게 일할 기회를 최대한으로 부여하는 일이어야 한다.


나라가 클수록 그 내부구조는 견고해야 한다. 또 지방분권적인 개발 방식이 필요해진다.
이러한 필요성이 무시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버린다.


고용이 모든 일의 대전제이다.
사람은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했을 때 타락하게 된다.


성공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국민 총생산은 매우 의심스러운 개념이며 현실로서는 불가피하게 신식민주의로
볼 수밖에 없는 현상을 낳을 것임에 틀림없다. (미개발국에 원조를 해주는 행위에 대한 설명...)


가난한 나라는 자립과 자조의 싹을 짓밟아 버릴 생산과 소비의 방법을 채용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결과는 의도하지 않은 신식민주의이며 가난한 사람들의 구원의 상실이다.


가장 좋은 원조는 지식의 원조이며 유용한 지식을 주는 일이다.
지식을 주는 것이 물질을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교육이란 특권을 손에 얻기 위한 패스포트인가 아니면 수도자가 맹세하듯이 스스로 떠맡는 의무인가
민중에게 봉사한다는 성스런 의무


교육이 특권의 패스포트로 전락하게 되면 교육의 내용은 민중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소수의 특권 계층은 그들을 특별히 취급하는 교육을 원하므로
농촌 생활 등을 경멸하며 민중과 유리되어 생활하는 일을 배우고 가르치게 될 것이다.


자본을 많이 투입하여 소수의 직장을 만드느냐,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많은 직장을 만드느냐의 문제
대규모 교육의 운영은 졸업한 학생이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으면 분명히 무의미해져 버릴 것이다.


종주국이 식민지에 들어온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을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기네 나라의 공업에 필요한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수단을 빼앗기는 일이다.
성장과 고용 사이에는 원래 모순이 없다. 현재와 장래 사이에도 모순은 없다.
어떠한 선진국이든 사람이 일하도록 하지 않고 성장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





제4부 조직과 소유권

경제학이 물리학과는 형이상학적으로 다르고 또 인간에 관련되는 일들을 대체로 예언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의 국가계획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문자 그대로의 계획이란 권력과 같은 것. 내가 보기에 자유 사회에서의 국가 계획이라는 말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상당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그 의도를 되도록 충분히 수용한 하나의 선언을 중앙의 기관이
집대성한 것이다.


정밀과학이 정확한 것은 인간의 자유가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표징이며 선택이나 책임, 존엄과 관계가 없다는
증거이다.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의 방법을 받아들여 이를 모방하려는 그릇된 시도를 한 결과 인간의 존엄성이
큰 손상을 입었다. 사회과학은 실은 정밀과학보다 더 위대한 것, 즉 예지의 한 부분이고 또 그러해야 한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 대부분이 경고하고 있다.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나
일상의 근로 생활 속에서 인간 관계의 황폐화가 진행될 때 인격이 손상당하는 위험성...


현대 문학은 사회가 우리와 그들의 두 계층으로 갈라져 서로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며 밑에 있는 우리는 정부를
까닭없이 싫어하고 그들은 위로부터 우리 민중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내려다보는 식의 멋진 신세계식의 두려운
광경을 그려내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커다란 조직 속에 작은 단위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에 있다.
다시 말해 생활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질에 있는 것이다.


어떤 제도나 기구도 혹은 경제 이론이나 학설도 제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형이상학적인 토대
즉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 양식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사적 재산의 두 가지
1. 자영업자의 개인 재산
2. 일하지 않고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는 사람의 개인 자산


R. H. 토니
근면의 원칙을 침식하고 있는 것은 사적 소유권이 아니라 사적 소유권이 근로로부터 유리되고 있는 점이다.


조직의 전원이 어느 정도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익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공공 목적이나 자선 목적에 돌려야...


사람이 스스로 일한 성과로서 재산을 갖는 일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근로 성과인 재산을 손에
넣는 일을 중지해야 한다.


국유화된 기업이 많은 업적을 올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일부의 특권층은 이를 혐오하고 있다.
소유라는 것은 단일의 권리가 아니라 권리의 집합체이다.


갤브레이스
민간부문은 풍족해졌지만 공공부문은 황폐해졌다.
여기서 갤브레이스가 논하고 있는 나라가 제일 풍족한 나라로 여기고 있는 미국이라는 점
공공부문의 황폐화가 1인당 국민 총생산이 훨씬 적은 나라보다 더욱 심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공공지출
부유한 나라건 가난한 나라건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편익을 사기업에 부여하고 있다.
그 편익에 대해 사기업은 직접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세금이라는 형태로 간접적으로 지불하고 있을 뿐이다.
그 세금에 대해서도 부인하거나 반대 운동을 일으키곤 한다. 교묘하게 탈세하는 사기업도 적지 않다.


스코트 바더 회사
회사의 규모를 작게 해야 한다. 종업원 수는 350명 정도를 상한선으로
보수는 최저와 최고 사이가 1:7 이상 되어서는 안 된다.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한 해임되지 않는다.
회사 순이익의 40% 이상을 수령해서는 안 된다.
최저 60%는 납세와 재투자를 위해 유보
수령한 이익의 절반은 노동자에게 보너스로 지급
전쟁과 관련된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 고객에게는 팔아서는 안 된다.


경영이 자본 소유자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을 허용치 않고 경영을 인간에 대한
봉사자로 변화시킨 것


과잉의 재산은 과잉의 권력과 마찬가지로 부패한다.





에필로그

진실의 일면에 접하려면 옛날에는 평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달아나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달아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혜가 특히 중요하다는 것은 선을 실행하는 데는 현실을 잘 아는 일이 선결문제라는 의미이다
사물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채고 있는 사람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


어디서나 나는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간단치 않다.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일" 이라는 게 그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