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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핑퐁 - 박민규

by librovely 2008.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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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 퐁           P I N G P O N G                                               박민규                        2006                창비




박민규
이름부터 안 끌린다
핑퐁
제목도 안 끌린다



그의 유명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제목은 더더욱 안 끌린다
근데 왜 읽었나
자이호님이 아주 좋아하시는걸 보니 궁금했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고 또 대강 뭔가 취향이 좀 비슷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아무래도 성차가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즉 박민규의 책은 아무 근거도 없이 여자 아니 나에게는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
그러나 좋든 말든 읽어보긴 해야했다 궁금했으니까 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라는 생각으로



가장 만만해 보이는 핑퐁이라는 다소 시시껄렁해 보이는 제목의 책을 대출받았다
표지에 대두에 새다리 흉한 그림이 하나 낙서처럼 그려져있다 음
2006 우수문학도서라는 투명 스티커가 붙어있다 음
책 표지를 넘겨보니 책날개에 나타난 작가님의 사진이란 음
이상한 안경 비슷한 것을 썼고 담배를 잡은 손가락에 왕반지들이 붙어있다
머리는 길어서 뒤로 묶은 것 같고 흡사 록스타적인 외모 음



소제목을 보니 살짝 흥미롭게 여겨지기 시작
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못과 모아이 두 주인공의 그림
책장을 넘겨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였는데 아주 흥미롭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작가다



이런 소재의 이야기는 자칫 잘못하면 완전히 식상하거나 훈계조의 내용이 될 수 있을텐데
그래서 오히려 문제를 문제시하기보다는 일상처럼 혹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데
참 잘 쓰셨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잘 썼다고 할 수밖에...



문체도 독특하다
눈먼자들의 도시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처럼 박민규도 따옴표 등의 문장부호는 거의 안쓰고 누가 그 말을 한 건지
밝혀놓지 않았지만 뭐 읽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나처럼 성격급한 독자에게는 이런 글이 더 좋았다
문장이 상당히 짧다 단순하다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더 속도감있게 읽을 수도 있고 또 더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 같다



내용은 중학교에 다니는  따돌림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두 학생에 대한 것이다
남자들의 '따' 라는 것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도 있겠지만 신체적인 폭력이 강한 모양이다
못과 모아이
못 박히듯이 맞아서 못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아이와 모아이처럼 엄청나게 큰 얼굴을 하고 있어서 모아이



치수라는 아이와 그 일당이 이 둘을 못살게 군다
아무때나 불러내고 부르면 즉각 달려가야 한다 밤이든 낮이든
그리고 음료수도 뽑아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그들이 기분이 별로이면 맞아도 주고 침을 뱉어도 그냥 당해야 한다
별로 신기할 건 없는 내용이다 이런 문제가 하루 이틀 있어온 문제도 아니고...



그러나 읽으면서 왜 인간은 남의 고통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걸까...
모든 건 상대적인 거라서 그런걸까?
남의 고통을 보고 난 저 녀석보다는 그래도 낫게 살고 있어 하면서 위안을 얻는걸까?



박민규의 탁월한 글솜씨로 읽는 동안 내가 못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의아했던 것은... 못의 생활이 아주 심하게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 ...
뭘까 이건...
마구 비참함을 느끼거나 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나아 하는 감정이입이 되어야 정상 아닌가
근데 왜 난 첫부분에서만 좀 당황하다가 금방 별 느낌이 없어진걸까? 읽다보니 금방 적응이 된건가?
아니면 뭐 별다르게 새삼스러울게 없다는 것일까? 아마 그런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다뤄지는 '따'라는 것은 남들로부터 배척당해서 느껴지는 외로움 따위의 감상적인 슬픔이 아니라
남에게 치이고 밟히고 억압받고 즉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그것들을 남들이 지나치게 건드리고 침입한
종류의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명령을 듣고 이리 저리 휘둘리는 주인공에게서 나를 본다...
지금 나에게 치수의 의미를 지닌 대상은 무엇들일까?
대충 뻔하게 다가오는 대상들이 있다 그건 사람도 있고 다른 종류의 것들도 있다
그걸 여기에 굳이 쓰지는 말아야지...



치수에게서 시달림을 당하다가 어찌어찌하여 그에게서 다소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는 주인공
시달리다가 잠시 찾아온 휴식에서 소소한 행복마저 느끼는 주인공
이 모습에서도 나를 본다.  간혹 당연한 것들인데 그걸 못 누리고 살다가 잠시 만끽하는듯 착각하고는
행복감을 누리곤 하는 나를... 보통의 사회에서 나처럼 미약한 존재들은 다들 이러고 살지 않나? ...
그러나 그에게는 치수 패거리 중 다소 미약한 힘을 지닌 것들이 다시 치수의 역할을 하러 슬슬 다가온다
인생이 그런거지 뭐...



그리고 저자는 '따'를 시킨 것이 치수와 그 일당의 행동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나머지 중간자들?  그 조용히 가만히 있었던 그들도 치수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뭔가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알면서도 그냥 무심코 무관심한 척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그 문제는
유지되는 것이다... 직렬하면 무서운 힘을 드러내는 다수들...




못과 모아이는 벌판에 있던 탁구대를 보고 우연히 탁구를 치기 시작한다


작가는 핑퐁 탁구치기를 삶이라는 것으로 비유하는 모양이다.
탁구채를 사러 가다가 세끄라탱이라는 핼리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를 기다리는 모임에 가입한 사람을
알게 되고 그 모임에 가입하고 정모에도 나가게 된다 
이 정모에 나온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서 남들 그리고 나를 본다...
다수인 척에서 더 나아가 사는 척하는 나...




초반부에는 못과 모아이의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모습이 중심이라면 중반부부터는 그건 기억도 안나고
이젠 좀 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초반부에는 다수인척하는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이젠 조건반사적인 인생을 사는 인간들...
그게 그거일까?
그냥 학교 다니고 돈벌고 애낳고 왜 사는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사는 인간들...
하여튼 인간은 왜 사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생존하는 게 아니라는 것...잔존하는 것이라는 말
생존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왜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어야 한다는 말
마지막에 탁구대결을 해서 이긴 사람이 지구의 인간세상을 인스톨할 것인지 언인스톨할 것인지 정한다는 설정
혹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반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깜박했다는 이유로 그런 대상이 되었듯이
어쩌면 우리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이유도 신이 우리의 존재를 깜박하고는 그냥 놔두어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내용들...  왜 지구에서 인간이 살고 있느냐....에 대한 박민규의 질문던지는 방법들이다....




난 왜 여기에서 이러고 살고 앉아 있는가...
교회 다니는 나는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었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설교시간에 자주 들었다
그런데 사실 아~ 이러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았던 것은 과연 인간이 살고 있는 게 신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서 영광돌리는 일의 핵심이라고 배웠다...
음...착한 것 같다가도 한없이 구차하고 속물적인 인간 속내를 지닌 인간의 생존이 과연 신에게 영광스런
일일까?  나만 쓰레기같은 인간이라서 이런 생각이 들지도...'다들 잘 살고 계실테니까' 말이다..



존재의 이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이게 참 난감하지만 살면서 꾸준히 벗어나기 힘든 문제인 거 같다
그래서 왜 대중가요에서도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열심히 떠들지 않던가...
내가 사는 이유를 찾다 찾다 못 찾겠으니까 너 때문에 내가 산다고 결론을 지으면서 말이다. ㅡㅡ;;




엄청난 수의 지구에 사는 인간의 수
엄청난 크기의 우주라는 공간 속의 지구
거대한 틀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한 인간 혹은 지구
나라는 존재는 사실 전세계적인 혹은 우주적인 차원에서 따져보자면 상당히 미미한 존재라는걸까?
가뜩이나 왜 사는지 모르겠는데 그나마 나의 존재는 먼지같이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니 더 허무하다
뭐 이런 느낌?



근데 이상한건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뭔가 비기독교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죄책감마저 좀 느껴진다는 것
어찌보면 종교라는 것이 어떤 것에 대해 아예 생각할 기회를 차단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답이 이거니까 의심하지 말고 받아 먹어라...
사실 신의 진리라는 건 의심을 하면 할수록 더욱 견고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
신이 존재함은 난 분명 믿는데 근데 나이가 들수록 자꾸 안하던 의심들이 저 깊은 곳에서 기어올라온다
기독교 서적을 읽어야 할 때가 오긴 온거다 라는 이 책과 아무 상관 없어보이는 생각으로 마무리...




단순한 문장이지만
핵심을 정확히 찌르는 훌륭한 내용이다
짧은 소설 한 편이지만
깊은 구석을 건드려놓는 훌륭한 소설이다
그래서 읽고 나면 마음이 대책없이 복잡해진다는 후유증...


박민규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어느 순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더 나빠질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가 사리진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삶이 그래서 시작되었다



세계는 다수결이다
누군가가 인기의 정상에 서는 것도
누군가가 투신자살을 하는 것도
누군가가 선출되고 기여를 하는 것도
실은 다수결이다
알고 보면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다수인 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눈물을 닦으며 다시 수업에 열중할 마흔한명의 <다수인 척>
스스로는 단 한번도 나를 괴롭힌 적이 없다 믿고 있는
그러니까 인류의 대표의 과반수 조용하고 착한 인류의 과반수 실은 더 잘해주고 싶었을 인류의 대다수



아무렴 어떠냐는 것이다
누가 따를 당해도 누가 자살을 해도 누가 살해되거나 누가 잠적을 해도
실은 그것이 인류의 반응이다
60억이다
인류라는 전체가 개인을 굽어보기에는 개인이란 개체가 너무나 많다
실은 그런 이유로 개인은 세계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외가 아니고 배제야




사는걸까
뭐가
우리들 말이야 이러면서 왜 살아야 하는 걸까
돈 언제까지 얼마를 마련해야 한다거나 언제까지 어떤 무엇이 되어야 하고 아아 귀찮게 이유도 모르면서
생활 생활하는 거잖아 별로 서로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애를 낳아 기르질 않나 나라마다 대사관을 설치하지 않나
불쑥 집으로 찾아와 음식 같은 걸 대접하고 말이야 죽었다고 울고 말이야 뭐 별로 서로가 서로를 그러면서
말이지 그런가 하면 남아메리카에도 사람이 살고...



맛이 갔어요 전부 다 맛이 갔다구요
말할 수 없었다  무척 말하고 싶었던 그것들을 그러나 말로 만들 수 없었다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유익한 대화를 나눠가며 키위를 블루베리를 마신다 해서 그것이 이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나는 생각했다
그보다 다수인 척 학원을 다니고 학교를 다니고 방학을 보내고 돌아와 또다시 여전한 생활을 할 나는
여전한 생활을 할 너는 여전한 생활을 할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 육십억의
불특정 다수는



4년째 컴퓨터만 하는 인간이나 2년째 전철만 타고 다니는 인간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철이니까 전철은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으므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실은 아무일도 안하지만 그래서 노력은 하는데 시운이 안 따르는 인재로 부모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성실하게 느껴지는 아들입니까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모습과 다를바 없는 느낌이 드는 대목...무의미하게 전철만 타고 뭔가 하는 느낌으로
하는척 하는 모습으로 위안을 얻듯이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바쁜척하면서 잘 사는 척하는...)



결국 악은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선악의 구별이 있는게 아니라 힘을 가지는 순간 악해지는 것이다
그런 결론을 얻고 나니 세상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아무도 힘을 가져선 안되는 데 누구나 힘을 얻으려 기를 쓴다
주여...핼리님은 지금 어디까지 오신 걸까.



저는 너무 참았습니다
실은 한계가 온 건 오래전입니다
차라리 돈돈 하고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게 속은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다 귀찮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조건반사만으로 탁구를 치는 건 가능하단다
조건반사만으로 삶을 사는 일이 가능하듯이
실은 비둘기도 탁구를 칠 수 있는거란다
그 비둘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렇게 살다 죽었지



저는 두개골에 금이 간 적이 있어요 맞아서
뭐 그런 것보다 그런 짓을 해놓고도 드라마를 보잖아요
시청자 의견을 남기고 또 모여서 너도 그거 봤냐? 모여서 얘기하고 막 비슷한 척하고 그런건 뭐랄까
실은 자기 생각만 하면서 그렇잖아요  그런거  누군가 살아 남으면 또 마찬가지겠지만



왜 우리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반드시 생존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우연이 우릴 그렇게 고안한 걸까?
영문도 모른 채 남아서 뭘 하려는 걸까?



우린 왜 탁구를 치는 걸까?
생각할수록 그건 우연이고 생각할수록 그건 고안된 일이었어
우린 왜 인간일까



아이들이 다수로 한꺼번에 나를 지나갔다
병렬의 9볼트 전류 같은 것이 가슴을 흐르는 기분이어서 나는 순간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백함같고 흰 새 같은 그래서 입을 벙긋이는 저 금어들이 그래서 무서웠다
직렬해서 언제 갑자기 가등을 켤지 몰라



결국엔 이 지구가 실은 인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란걸 알게 됩니다
좋든 싫든 그건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문제예요
그래서 사실 인류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습니다
그런 편이죠 문제는 왜 우리가 살아왔으며 사라진다면 왜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핑퐁이 시작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리의 쥐와
한 마리의 새
스키너 박스에서 길러진 쥐와 새
먹이를 주는 조건반사로 평생을 태스트당하고 길러진 존재들입니다
삶의 대부분을 먹기 위해 공을 쳤습니다











작가의 말 (주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는 일에도 별 문제가 없고 아니 없다기 보다는 늘 그랬듯 그런 거 아니겠어? 라는 느낌의 여름날이었다
도시의 어딘가에선 힘없는 인간이 맞아죽고 세계의 어딘가에선 힘없는 민족이 폭격을 당한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
이곳은 별 문제가 없는 아마도 그런 시추에이션


아직도
결국 자기자신과
가족과
민족을 위해 사는 척 한다
그리고
종교를 믿으면 그만이다
그만일까?


실은 인류는 생존한 게 아니라 잔존해왔다
만약 인류가 생존한 것이라면 60억 중 누구 하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체 왜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영문도 모른채 말하자면 이곳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잔존해왔다


정신이 결코 힘을 이길 수 없는 이곳에서
희생하는 인간이
이기적인 인간을 절대 당해낼 수 없는 이곳에서

이곳은 어디일까 남아있는 우리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