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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동물원에 가기 - 알랭 드 보통

by librovely 2008.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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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2006'           이레

 

 

알랭 드 보통...

책을 안 읽던 시기에는 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름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알랭 드 보통의 이름에

노출되기 시작했다...이런 나 였으면서도 알랭 드 보통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한다...나도 몰랐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이런 소리를 왜 하는거지...??

 

 

알랭 드 보통은 사실 사랑시리즈 3편을 읽고는 괜찮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의 기술이나 불안 그리고 행복의 건축을 읽고는 마음에 쏙 들었다...

이 3권이 앞서 읽은 사랑시리즈보다는 더 좋았었다...

그리고 이 책.... 제목을 봐도 사랑시리즈와는 거리가 멀어서 상당히

기대를 하고 펼쳐들었는데...결과는??

 

 

좀 실망이다...

내용이 이상했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다만 다른 책에 나온 내용이 반복되는 슬픔을 주는 책이었기에....

여행의 기술과 불안에 나오는 내용이 상당부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다만 더 압축적으로 제시될 뿐 별반 다른 점은...

 

 

그래도 뭐 워낙 다 공감이 가는 너무 멋진 내용이기에....

그냥 저냥 가볍게 읽을만했다...

 

 

주의할 점은 이 책은 가장 나중에 읽어야 한다는 것....

이 책을 읽고 그의 다른 책을 읽으면 좀 김이 샌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런데 반대로 먼저 읽어도 괜찮을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흥미가 생긴다면

그의 다른 책들도 자신의 취향임을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ㅡㅡ;;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이 여행길에 가볍게 들고가서

여행지에서 천천히 한 문장씩 음미하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 속에서 자신의 슬픔과 실망의 메아리를 목격하고

그럼으로써 혼자 감당하던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

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벽에

걸어야 할 것은 쓸쓸한 도로변 휴게소 그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남자와 여자들

이런 공동의 고립은 혼자인 사람이 혼자임으로 해서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위대한 화가와 만나서 얻을 수 있는 부수입은 그들의 그림 덕분에

이 세상에서 화가가 예민하게 반응을 보였을만한 곳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그림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다다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런 그림이 담긴 엽서를 사서 책상 위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놓기도 한다.

그 그림은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 마음 깊은 곳에서 바로 나 자신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감정적 질감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눈앞에

존재하는 견고한 상징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정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외려 생각도 쉬워진다.

음악이나 풍경은 정신의 검열관이 잠시 한눈을 팔게 하는 것 같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사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사랑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릴 운명인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

이 질문의 재귀적 운동 속에서 나의 자아는 일종의 배신과

비진정성에 점차 물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클로이의 욕망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나 자신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시도를 되풀이했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뭘

기대할까? 나는 어떤 취향과 지향에 내 행동을 맞추어여 할까?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임이 분명해진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것과 연결되는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

 

 

클로이의 질문 하나 하나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강인한 남자를 좋아하면 나는 강인해졌다.

그녀가 윈드서핑을 좋아하면 나는 윈드서핑 선수가 되었다.

그녀가 체스를 싫어하면 나도 체스를 싫어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받는다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인간 생활의 독특한 특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 로마 문명은 일을 노예에게나 맡겨야 할 잡스러운 짓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초기 기독교 역시 노동을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은 없다.

정신을 팔 일이나 친구도 없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사랑의 본질과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전화기가 옴짝달싹도 안 했던 주말, 매끼 통조림을 따서 식사를 하고

귀에 거슬릴 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BBC 해설자 목소리-케냐

영양의 짝짓기 습관을 설명하고 있다-를 들으며 주말을 보낸 뒤에야

왜 플라톤이 사랑이 없는 인간은 팔다리가 반뿐인 생물과 같다고

말했는지 이해를 할 수 있다 (플라톤-향연)(웃기다~)

 

 

알랭 드 보통과 연인 사샤의 말다툼...

그녀:당신은 똑똑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나와 의견이 안 맞는거야

그:나는 똑똑한 여자를 정말 좋아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우리 둘 다 이런 수준에서 잘 벗어나지 못했다.(또 웃기다~)

 

 

프루스트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보면 역설적으로 나 혼자 파악하려 할 때보다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된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농담이 비판에 특별히 효과적인 것은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풍자의 진정한 목적은 악의 교정이다 _ 존 드라이든

 

 

만화가들의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적 목표는 유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런 식으로 조롱할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세상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개그도 마찬가지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