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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밤에 떠나는 내방여행 -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

by librovely 2008.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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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떠나는 내방여행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                    2001'                   지호



내방여행
내가 애초에 빌리려고 노린 책은 이거였다는 말씀...
얼핏보고 쉽게 찾았군 하고 집어들었는데 집에 와서 펴보니 제목이 살짝 길구나...
그냥 내방여행이 아니라...'밤에 떠나는' 내방여행...
그야말로 낚였다...는 생각을 했는데... 북커버 앞날개의 글을 좀 읽어보고는 다시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 보통이 아니구나...
이름은 처음 들어봤는데..뭐 내가 처음 듣는게 한 두가지 이겠느냐만은...
이 사람의 직업은 군인이라고 한다. 특이하다. 글쓰기와 군인이라는 직업은 너무 안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뭔가 글이 요상하겠구나 예상을 하게 되었다.


자비에르의 작품은 알랭 드 보통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그리고 천재적인 작가 알베르 카뮈...게다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니....
놀라울 뿐... 그리고 내가 재밌게 읽을 수 있을만한 류의 글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뮈나 혹은 건너건너 영향을 받았을 알랭 드 보통의 글은 내 취향이기에...
(물론 취향이 맞다는 것이지 내가 그들의 글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결과는?
음.
정확한 내 취향의 책이다.
나 뿐만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위대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의 글은 아주 유쾌하며 쉽다~
그렇다. 쉬워야 한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글을 쉽게 쓴다. 그것도 능력인 것이지...정통하면 쉽게 설명이 가능.
사실 이 책은 쉽다 어렵다는 말을 할 그런 내용은 아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니까...가벼운~



자비에르가 위대한 이유는 독창적이고 거침없는 문체 때문이라는데...
나야 번역서를 읽었기에 그의 문체를 직접 느껴보지 못한 것이 눈물겹게 아쉽긴 하지만 변역을 읽어도
그의 유머러스함은 고스란히 느껴진다...웃기다...이 작가 정말 재미있다.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식거리게 만드는 그런 약간은 어이없으면서 재미있는 그런 글이다.



그가 유명해지게 만든 계기가 된 책 내방여행은 어디서 들어봤었다. 어디에서?
이우일의 옥수수빵파랑에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작업의 여행의 기술에서 보았던 것 같다.
워낙 제목이 특이하기에... 내방여행이라니...얼마나 특이한가...
여행이라함은 일상의 장소를 벗어난다는 것이 핵심인데 내방과 여행의 조합이란...


그는 불법결투를 벌여 42일간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었고 그 지루한 시기에 내방여행이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내방여행을 쓰고 8년이 지난 후에 쓴 책이다. 하룻밤 그러니까 4시간 동안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쓴 것인데...엄밀히 말하면 내 방은 아니구나... 자기 집이 아니라 잠시 임시로 머무는 그런 장소였으니까...
하여튼 그는 자기가 머무르는 그 방의 창에 걸터앉아 살짝 구차하면서 어느정도는 낭만적이면서 또 어느
정도는 웃기는 4시간의 여행을 한다. 여행 도중 졸아주는 센스도 지켜주시면서...


웃긴 것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난 자비에르의 유머러스함이 상당히 맘에 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중하게 언급하던 로진이라는 것이 알고보니 개였고...
우연히 마주치게 된 아래층의 여인에게 바로 반하고 바로 심오한 계산 하에 작업을 거는 그의 태도...
그녀에게 작업을 거는 그 과정이 얼마나 웃기게 묘사가 되고 있는지...그렇게 대단히 세밀한 묘사를 한 것도
아닌데 그의 행동이 정말 눈앞에 보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시작되는 그의 연애 강연...그 강연을 시작할 때 운을 떼는 그 한 마디...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를 사랑합니다.
제가 알고 있거나 만나고 싶어하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여자를 사랑합니다.
더 나아가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리고 언젠가 존재할 모든 여자를 사랑합니다.
저의 상상력이 창출할 그 무수한 여인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여자란 여자는 모두 제 사랑의 드넓은 범주 안에 있습니다.
누가 알았겠는가? 책을 읽는 도중에 사랑고백을 받을 줄을...그렇다. 자비에르는 분명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언젠가 존재할 모든 여자에 분명 속하니까 말이다. 자...사랑고백에 굶주린 여인들이여 이 책을 읽으라...ㅡㅡ;;


초반부에 자기 종이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을 떠나갈 것을 알고 낭패감을 느끼는 것도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다기 보다는 이 부분에서는 살짝 웃기게 쓰긴 했으나 그의 마음속 깊이 어떤 감정이
느껴졌을지가 전해져 왔다. 자비에르는 인정이 많다. 자비에르가 종을 결혼시킴과 동시에 떠나보내며
느꼈을 그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간혹 느낄 일이 있으니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건지도...


이 책은 정말 읽는 동안 너무 재밌어서...그러나 글씨가 매우 크고 줄간격이 넓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140페이지
남짓하기에 천천히 아껴 읽다가 괜히 접고는 표지의 로진도 들여다보고 표지의 애매한 무늬로 매직아이도
해가며 시간을 때우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빨리 다 읽어버리기 아쉽다...그리고 종종 앞날개의
못생긴듯한 자비에르의 초상화도 뚫어지게 쳐다보고...왜? 왜긴 나에게 고백을 했는데 상대의 얼굴이 궁금하지
않겠는가...ㅡㅡ;; 하여튼 자비에르는 정말 유머러스하다.


이 세상에 존재한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그리고 존재하지 않고 상상속에서만 있던 여자까지 모두 사랑한다는
자비에르는 반대로 모든 여자를 꼬실 능력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이 책 한 권 들고 나가 지나가는 여인네를
잡아다가 네방이나 내방이나 하여튼 어느 방에든 감금하고는 이 책을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는
여인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칠 것이다. 왜? 나가고 싶으니까...자비에르 얼굴도 슬픔을 더해줄 테니까...ㅡㅡ;
그러나...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변한다? 아니다. 변하지 않는다. 계속 울고 불고 난리를 칠 것이다. 왜?
자비에르가 너무 좋아서.... 감동해서?  너무 과장된 표현이긴 한 것 같지만...하여튼 이 책은 정말 정말 재미있다.
그루누이의 향수에 대적할만한 자비에르의 밤에 떠나는 내방여행~


책이 재미있다 아니다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인지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도 나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읽고 나서 여기저기 권해주고는 그 후로 다시
물어보니 신통한? 내가 원하는 정도의 반응은 별로 안 보였다... 이 책도 그럴지도...
하여튼 나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니 자비에르 문체는 어느정도 아멜리 노통브를 연상시킨다...뭔가 비슷한 면이 있다...)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 라는 명언을 자비에르는 좋아하였던 모양이다.
그런 그가 창의적인 문체로 유명했다니 복이 많구나...
내가 느낀 자비에르의 문체란...솔직 담백하면서 진지하고 낭만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끝은 꼭
유머러스함을 첨가하여 가볍게 날려버리는 독특한 문체...물론 너무 맘에 든다. 번역이 잘 되었다고
생각된다. 번역된 문체도 충분히 훌륭한걸 보니...
근데 나의 문체는 대체 어떨까? (문체는 글을 놓고 보는건데 네 글이 글 맞긴 하니? 글쎄다...)









드 뷔퐁이라는 저술가가 남긴 명언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


드 뷔퐁은 (그의 실명은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자신의 정원에 은둔용 오두막을 지어 거기서 일을 했다
거기에는 다른 가구는 일절 없고 오직 팔걸이 의자와 글을 쓰기 위한 책상만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몽상 나부랭이를 드 뷔퐁 씨의 불후의 명작과 비교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어서 그를
따라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느날 하인이 최근에 완성한 파스텔화를 보고 먼지가 쌓인 줄 알고 헝겊으로 닦았다
그 어느 때보다 거칠어진 나의 다른 반쪽은 마침내 그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조카딸이 놀러와서 조그만 초상화에 얼굴을 대고 햐로 물감을 핥았던 것이다


한적한 이 다락방에서 시간은 잘 흘러갔다
한 번은 공상에 빠져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됐는지도 몰랐다
음 이 달콤한 고독이여 자신에게 열광하는 이를 취하게 하는 그대의 매력을 내 이미 모르는 바 아니다
하루 중 단 한 시간이라도 혼자 있으면 따분해서 몸이 꼬이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보다 바보들과 떠드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자는 불행할지어다


나는 이런 대도시 속에서 겪는 고독이 좋다
나는 아침 시간만큼은 은둔자이고 싶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다시 사람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갑자기 주인을 떠난 것을 갖고 배은망덕하다며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의 마음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애당초 그것을 막은 것이 잘못이었다
나는 최대한 거만한 태도로 자신을 무장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그의 영혼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읽을 수 있었으며
어떻게 해도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순진한 촌사람들에게 결혼이 갖는 위험성을 예시하면서 겁을 준다 하더라도
갓 결혼한 신랑은 마치 높은데서 떨어지긴 했지만 다친 데는 없는 사람의 표정을 짓는다
뭐라고 그렇게 빨리?
나는 말했다 애정과 회한의 감정이 심한 언짢음과 뒤섞여 혀가 잠시 굳어졌다
그는 15년 동안 나를 위해 봉사했지만 헤어짐은 단 한순간이었다
15년의 지기가 남남이 되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했다
음 애달픈 운명의 인간이여
사소한 애정일지라도 시간을 두며 흐르는 하나의 대상에 쏟아서는 결코 안 된다


로진도 지금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빙고는 로진은 개이름)
결국 그는 노후에 그의 주인과 함께라면 전혀 가망성이 보이지 않는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창문에 닿으려면 작은 사다리가 필요하다
빛은 지붕 밑 방을 거의 수직으로 비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묘하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이는 거라곤 하늘과 방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하늘과 직접 맞닿아 있을 수 있었으며 나의 사고는 내가 1층에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데까지 고양될 수 있었다  (알랭 드 보통과 비슷한 생각들)



빛나는 밤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내게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매력이다
나는 여행이나 혹은 가벼운 산책을 할지라도 혼자 하는 경우는 없다
늘 하늘의 신비로움을 감탄하며 여행하거나 산책한다
그 숭고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나의 생각이란 것이 부질없어 보인다 (이 또한 알랭 드 보통적이다)
그 모습에서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기쁨을 발견한다
그처럼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보내는 빛이 내 눈에 와 닿는 것을 그저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남자라면 이 말은 좀 적어두겠다)


바보들
그들은 하늘을 보고 싶으면 볼 수 있고 보는 데 돈도 안 드는 것이라고 해서 굳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에게 드러나 있지 않고 하늘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광경을 보는 데 어떤 지휘자가
필요한 것이라면 지붕에 있는 이 로열박스의 자리세는 치솟을 것이며 토리노의 여인들은 다 내 다락방
창문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아 내가 왕이라면
의분에 찬 나는 외쳤다
매일 밤 경종을 울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백성들을 창가로 가서 별을 보게 만들겠노라


좌측 아래 발코니에 하얀 실내복을 걸친 어떤 젊은 여인이 보였다
그녀의 노래를 더 듣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위험한 자세를 하고서라도 별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인을
언제까지나 훔쳐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의 노래는 끝이 났다
나의 잔인한 운명이 그녀를 철저히 침묵 속에 빠뜨렸다
얼마간 그렇게 있었을까 마침내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 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급한 순간에도 나의 침착한 마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온화한 별빛과 이 아름다운 여인과 잘해 보려는 강렬한 바람에 힘입어 나는 주의도 끌고 목소리도 가다듬을 겸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날씨 참 좋네요



나보다 자신이 더 능란하다고 착각하고 무자비하게도 나를 빤한 수작이나 거는 놈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런 중요한 상황에서 내가 입에 발린 말로 수작을 걸려 했다면 나는 분명히
신중해야 하고 고상한 취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대놓고 비웃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말을 건넬 때 입에 발린 말로 시작하면 그것이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라 할지라도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
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게다가 의식적으로 멋있게 말하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감동을 주려고 애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여인보다
오히려 자신을 더 생각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여인들은 자신에게 온 정신이 팔려 있기를 원한다
비록 그들이 내가 서술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놀라운 정도로 타고난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저 접근하기 위해 건넨 말이 제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말일지라도 남자의 허영이 만들어낸
발림수작보다 천 배나 낫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서툰 말이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던져졌을 때
시어로 아름답게 꾸민 편지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정확하다...천재구나...)


여기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인연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사귐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가볍고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수작이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겨우 마음 반쪽만 열고 사랑했던 사람이 사랑과 우정의 민감한 감정 사이에 긴 세월이 놓여 있다는 둥
별 얘기를 다 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곁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노라면 그 나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침묵이 대화만큼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내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내가 지붕 가장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로 내가 꺼낸 얘기
이상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입 밖에 낸 뒤 내가 듣고자 기다리는 소리가 자아내는
마지막 뉘앙스 하나까지 다 잡아내기 위해 나의 온 영혼은 고막에 모여들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임을 시작하고 달콤한 말이 혀를 통해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오 하늘이시여 커다란 놀라움과 실망을 안겨 주는 운명적인 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 늦은 밤에 거기서 뭐 하는 거요? 어서 안으로 들어와요
아파트 안에서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별자리를 보다가 슬리퍼를 보고 슬리퍼를 보다가 별자리를 보았다 ( 아래층 여자가 벗어 둔 슬리퍼)
그때 이 두 사물의 느낌이 아주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는 내 머리 위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가지 고백한다면 나를 슬리퍼로 빨려들게 한 힘은 나의 다른 모든 능력까지도
지배해 버렸다는 것이다 반짝이는 별을 보고 느끼는 황홀경은 찰나여서 방금전의 감흥은 온데간데 없었다


발코니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드럽고 아담하며 석고보다 더 하얀 발이 가만히 앞으로 나와
깜찍한 슬리퍼를 다시 차지하는 것을 본 순간 별을 보며 느꼈던 감흥은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뭔가를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까처럼 미리 준비할 틈이 없었기 때문에 나 답지 않게 허둥대었고 적당한
말을 고르기도 전에 발코니 문은 다시 닫히고 말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즐긴다
우리끼리만 아는 것으로 하고 그 발견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무수한 연애의 번거로움이 사라진 좀더 극적인 연애를 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평범한 방식으로 사랑을 하게 되면 감정은 희망과 따로놀고 상상하던 것은 늘 여러 가지 모습으로 좌절에
이른다는 사실을 살면서 알게 되었다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만약 한 개인을 그토록 신속하게
사랑하도록 만드는 감정을 여자 전체로 확장할 수 있다면 어떠한 체면의 손상도 없이 전에 없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여인을 사랑할 만큼 식지 않는 열정을 갖고
태어난 사람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를 사랑합니다.
제가 알고 있거나 만나고 싶어하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여자를 사랑합니다.
더 나아가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리고 언젠가 존재할 모든 여자를 사랑합니다.
저의 상상력이 창출할 그 무수한 여인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여자란 여자는 모두 제 사랑의 드넓은 범주 안에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파란만장한 일들은 모두 거기에서 비롯하며
그것을 우연으로 치부하는 것은 더없이 어리석은 일이다


생필리프 성당 종탑의 시계가 서서히 자정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종소리를 하나씩 세었다
마지막 종소리와 함께 가슴깊이 한숨이 새어나왔다 또 이렇게 내 인생의 하루가 가는구나
사실 시간이란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나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음이 지운 형벌이라고 믿었다 시간을 이렇게 음울하게 정의하게 되어 기뻤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다른 시계가 자정을 알리자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몇 초 후에 강 건너편에 있는 카푸친 수도회
종탑에서 세번째 종이 마치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자정 종소리를 울렸다
나는 화가 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본다
그래서 그냥 흘려 보낸다
그렇게 죽음에 익숙해져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언젠가 죽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만약에 죽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그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더욱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밤과 하늘과 별과 친밀한 관계를 나누고 그들이 주는 것을 어떻게 이롭게 사용하는지 알게 된 것은
너무도 멋진 경험이었다 인간들과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에는 너무도 많은 위험이 있다
정말 좋아보이는 사람들을 믿었다가 얼마나 많은 낭패를 보았는가
이 부분을 주로 달아 상세히 써 볼 생각을 했지만 그만 두었다
주가 본문보다 더 길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짧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인 내 여행기의 적절한 균형미를 다치게 했을 테니 말이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발췌를 하면서 다시 보아도 너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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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3

<내 방 여행>을 읽고 싶다...
오늘 문득 생각나서 온라인서점 그리고 헌책 판매 사이트까지 다 검색해 봤지만 없다...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도 이렇게 재밌었는데... <내 방 여행>은 얼마나 재밌을까...

방법은 이미 읽었다고 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가서 구걸하는 것 뿐이지만... 그것도 못하겠고...
갖고 있는 사람의 책을 살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게 안된다면 읽고 돌려주기라도 어떻게 안되겠니...
왜 이런 멋진 책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는건지... 하다못해 e book이라는 것도 품절이던데...
궁금해 미치겠구나....

오래된 도서관의 서고에는 있을지도... 마지막 희망....
절판된 책을 구해주거나 공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뭔가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원서로는 있을까? ...
원서는 책이 아니다...나에게는...심지어 불어라니...글이 아니라 그림에 더 가깝겠군... 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