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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by librovely 2022. 8. 13.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2020        웅진지식하우스

 

며칠 전에 읽었다

이틀 동안 지하철에서 다 읽었다 

허지웅의 책을 여러 권 (빌려서)읽었는데 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그게 당연한거겠지....

 

병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구구절절한 내용이 없었음에도 그야말로 안구에 습기가 자꾸 차 올랐다

너무 슬펐다 ㅜㅡ 

재발하면 항암을 안할거라고 썼던데 그냥 재발이 안 되었으면....건강했으면 좋겠다

 

힘든 일을 겪고 또 자신의 깨달음(?)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씀씀이가 참 좋... 물론 책도 많이 팔린 것 같

오래 건강하게 살고 이런 글도 계속 썼으면 좋겠다 내가 계속 빌려읽고 정신 단련할 수 있게 ㅜㅡ

(책 내용이 뭔가 BTS와 철학하기와 통했다... 두 책에 다 니체가 등장해서인듯....나도 니체가 좋다...

난 니체와 실존주의도 통하는 것 같다 같은 말을 하는 느낌이....영원회귀나 기투 앙가제나...

내 삶이 인간이라는 종의 삶을 규정지을 수 있는 정도의 삶이나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은 삶이나 비슷하게 느껴짐)

 

참 등록금을 교수라서 자기 돈이 아닌 돈으로 줄 수 있었음에도 허지웅의 부탁에도 거절했던 아버지 이야기는

이 책에도 등장한다... 두고 두고 이야기하게 되는 걸 보면 상처가 매우 깊었나보다....

하긴 나도 이해가 안간다...도대체 무엇때문에 안 준 것일까... 고통 받길 바란건가 자식이...

자기 돈도 아닌데 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이유조차 설명 안해주는 건 또 무슨 마음인걸까

 

아주아주 좋은 책이다

꼭 읽어볼 것

특히 20-30대에게 더 약이 될 것 같다

10대도 마찬가지고...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매대 위에 보기 좋게 진열해 놓은 근사한 사진과 말잔치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망했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오늘 밤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싶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이길게요의 마지막 모음이 동그랗게 말린 입술 끝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질게요 질게요 질게요 아팠다 모르핀도 소용이 없었다

 

시퍼렇게 된 양쪽 팔에 더 이상 주사를 맞을 혈관을 찾지 못해 발목과 사타구니를 헤집기 시작했을 떄

나는 처음으로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생각을 했다

 

밥을 먹으면 목구멍과 싸웠고 샤워를 하면 물과 싸웠으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과 싸워야 했다

처음부터 가족을 포함해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도록 조치해 두었기 때문에 외로움도 시비를 걸어왔다

 

살면서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 공정하게 돌려받은 경험이라고는 몸을 쓰는 일밖에 없었다(운동)

형편이 좋은 집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이기는 경험을 쌓는 편이 비교적 수월하다

스스로 형편이 불리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몸을 이기는 경험을 쌓아나가자 

출발선이 다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몸을 이기는 경험을 대신 쌓는 것이다

 

3차 항암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망가져 있다는 말을 내가 얼마나 쉽고

편하게 써왔는지 그때 알았다 푹 자고 일어나 샤워를 한다고 해서 씻겨내려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머리털과 눈썹이 사라진 건 고통 축에 끼지 못했다 단 하루만 통증 없이 잘 수 있다면 평생 머리털과

눈썹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배변할 수 없다는 걸 한 시간 만에 깨달았다

그날 처음 울었다 (이 부분에서 나도 눈물이 나옴 ㅜㅜ )

 

수면제와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우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내 삶에 고통을 안긴 사람들의 얼굴이

천장에 투사된다 나를 배신하고 기만하고 속였던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내게 암을 심었다고 확신했다

 

너무 당연한 결론이었다 나는 어느 날 죽기로 마음먹었다 

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낫는다고 해도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고통을 참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피할 수 없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결과를 감당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있는 힘껏 노력할 뿐이다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

그러면 다음에 불행과 마주했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내일은 차를 수리해야겠다

 

나와 내 주변의 결점을 이해하고 인내하는 태도는 반드시 삶에서 빛을 발한다

그걸 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삶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해체되었더라도 위기가 닥쳤을 때는 아무런 조건 없이 언제든 다시 찾아와 옆을 지켜주는 게 가족이다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좋은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겠다

우리 병원에 오는 우울증 환자들 가운데 기혼자들의 9할은 배우자 때문에 우울하다

나는 멀쩡하게 결혼해서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대체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았던 이들이

대체 왜 이런가 싶었고 특히 자기 이야기 대신 환자들의 사정을 예시로 든 이유가 궁금했지만 캐묻지

않기로 했다 너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이름 모를 학부 선배가 고기를 산다는 소문이 돌면 반드시 찾아가 구석에 앉아 당대의 히트 상품인

대패 삼겹살을 미친듯이 먹고 쟤 누구냐 라는 말이 들려오기 전에 자리를 떴다 고시원 밥통에는 화수분처럼

늘 쌀밥이 솟아나기 마련이니 옆방 아저씨가 내어놓은 짜장면 그릇에 밥을 말아 곧잘 비벼 먹었다 

편의점에서 천 원에 열 개들이 치즈빵을 사 먹었다 아르바이트 월급을 떼이면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노동청 임금체불 담당자 대신 지옥 끝까지 추적해 쫓아가 돈을 받아냈다 

써놓고 보니 궁상맞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창피할 게 없다는 거다 모든 게 생존의 문제였다

나는 혼자고 도와줄 사람은 없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쓰고 다자이 오사무는 죽었다 애인과의 동반 자살이었다

시신은 그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에 발견되었다 

평생에 걸쳐 네 번의 자살 기도를 했다

다섯 번째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세 번은 애인과 동반 자살 기도였다

두 번째에는 애인만 죽고 다자이는 살아남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자살한 것이다 그런 결함들은 냉수 목욕이나 기계체조와 같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만으로 충분히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미시마 유키오는 훗날 자살했다 할복자살이었다

 

저 두 소설가는 나약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꼴이었다 우리 모두가 나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나약한 부분을 동반자처럼 짊어지고 그것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인정하지 않고 고약한 위악을 내뿜는 사람도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후자였다

 

피폐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는 늘 자조와 비관이기 마련이다

어느덧 나는 완전무결한 피해자라는 생각 안에 안도하며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을 구하기 위한 자력구제의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하든 늘 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그렇게 타락한다 니체가 말한 심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지금이 밑바닥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때가 밑바닥인 것 같습니다(난 항상 밑바닥이었나...)

거기 이르고 나면 여기서 더 망해봤자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니 생존을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됩니다 배고픈 건 주워 먹으면 되고 기분 나쁜 건 내가 못났으니까 하고 넘기면 됩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뭐든 할 수 있고 또 뭐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삶이 알려준 값비싼 교훈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닥을 찍고 고비를 지나 안정을 되찾게 되면 우리는 매번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솔직히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 

재발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 기다리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환멸이 느껴지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세상의 추악한 것들로부터 가장자리로 밀려나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살 가치가 있나요

라는 질문을 하루 수십 개씩 받으면서 거기에 대고 가치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나 자신이 역겹다

그래서 나는 니체를 다시 읽기로 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어쩌면 이건 그냥 사랑 이야기다

내게 있어 니체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단연 운명애(아모르파티)와 영원회귀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지상명령과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라는 개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다 

우리가 죽으면 똑같은 인생이 다시 반복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구절을 여러 번 읽고 이해한 뒤 토할 뻔 했다  

우리가 과거의 인생을 반복하고 있고 그것을 다시 영원히 반복한다는 아이디어는 끔찍한 생각이다

니체는 정확히 바로 그 공포에 맞서라고 이야기한다 운명론적 공포를 극복하고 반복되더라도 좋을

만큼 모든 순간에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관없다고 이토록 끔찍한 삶이라도

내 것이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 삶을 사랑하라 주문하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바로 그 순간 네 삶의 고통과 즐거움 모두를 주인의 자세로 껴안고 긍정하라는

아모르파티와 결합한다

 

니체는 1889년 광장에서 마부에게 학대당하고 있던 말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다 쓰러진 뒤 완전히

미쳐버린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1900년에 죽는다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고

연필을 들 의지조차 생기지 않을 때 나는 <즐거운 학문>이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예전에 읽으면서 형광펜으로 칠해놓았던 부분만 다시 읽는다

그리고 그의 삶을 그의 글 위로 펼쳐본다

 

오스카 와일드가 미국에 방문했을 때 세관에 내 천재성 이외에는 신고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전 세계 나르시시스트들의 귀감이 되었다

알프레드 더글라스는 스물한 살의 옥스포드 대학생이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랑에 빠졌다

수렁에 빠졌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가슴 속에 큰 구멍아

있어서 아무리 큰 사랑을 바쳐도 아무리 비싼 보석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대 방향으로 힘껏 도망쳐야 한다 잡아 먹힌다

알프레드가 그랬다 속물에 사치가 심했고 오스카가 멀어지려 하면 자살하겠다며 상대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 오스카 와일드는 빈털털이가 되어가면서도 그런 그를 사랑했고 동시에 빠져나오고 싶어 했다

 

그는 완전히 망가졌다

뒤늦게 삶 앞에 겸허해졌지만 이미 삶 자체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3년 후 죽었다 죽기 전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이 뭔지 모를 때 글을 썼습니다 이제는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쓸게 없습니다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악이 평범한 것은 사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강조했던

바로 그 생각-사고 말이다 시키는 대로 주어진 대로 혹은 우리 편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태도만이 오직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꿔야 할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밝은 눈으로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

가면 안의 내가 탄탄하지 못하다면 가면을 쓰든 안 쓰든 아무 차이가 없다 

죽은 어른의 글에 기대도 좋다 나는 그렇게 했다 

여의치 않으면 결코 닮고 싶지 않은 최악의 어른을 찾아내 그의 인생과 나의 선택들을 비교하며 늘 경계하는

것도 훌륭한 선택지다 부디 청년들이 버거운 원칙이나 위악으로 스스로를 궁기에 몰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라는 것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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