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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려한 휴가 (2007)

by librovely 2007.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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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2007)

 

 

 

이런 영화 좋다.

이 영화를 홍보하는 것을 보고 바로 생각난 영화는 홀리데이였다.

누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발악'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

이런 영화가 좋은 이유는 일단 무거운 내용이라서... 그리고 나랑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들이기에(사실 매우 관계가 있는

내용이지만...이런 일이 모이고 모여 지금을 만든 것일테니까...

뭐 지금도 맘에 쏙 드는 세상은 아니지만 그래도..희생이 있었기에

프롤레타리아가 이 정도라도 살게 된거 아니겠는가...)

스스로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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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고 지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지나간다'  배웠다는 느낌보다는지나쳤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나만 그랬나? 생각해보니 지나치며 배우지

않은 것이 뭐가 있냐...라는 생각도 든다...)하여튼 국사책의

끝부분에서 대강 배우고 지나치는 내용들이라서 아마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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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쓴 내용을 삭제했다... 10줄 정도...

내가 그렇지 뭐....

 

 

하여튼 이런 내용을 영화로 다뤄주는 것 만큼 계몽효과가 강한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나한테는 계몽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눈물을 전혀 흘리지 않았지만 동행한

친구를 비롯한 사방의 사람들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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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독해서? 내용 파악이 안 되어서?

나도 참 슬펐다... 근데 눈물을 흘리기가 민망했다...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나의 자아비판기제...이것이 눈물을 막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한반복되는 질문 하나...

"너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거 같아? "

답을 안다...정확히 안다... 그래서 참...민망하고 기분이 뭣하다...

쓰러져 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보고 나는 어떻게 했을까?

집에 틀어박혀서 나가지 않고 떨고 있었겠지? 아마도...

근데 또 모를 일이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하지만 정확한 건 안면없는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걸고 가서 돕지는 못했을 거라는 점...난 인간 슈렉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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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난 정말 나라를 위해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존경

한다. 어떻게 그런 숭고한 정신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직접적인 연관이없는 대의를 위해 그렇게 나설 만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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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사전을 검색해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金載圭)에 의해 시해됨으로써(79. 10. 26)

대통령 대행체제가 되고 한 동안 정국이 불안정하였다.

이러한 시기를 틈타 신군부세력(전두환, 노태우 등)이 제2군사

쿠데타를 일으켜(12·12 사태), 순식간에 무력으로 군부를 장악하고

정치권을 장악하였다. 또 다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통치

시대로 회귀하였다. 유신체제에 이어 민주헌정이 정지되고, 민주

정치 지도자 투옥 등 군사독재가 재발하자 국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하여, 국민의 저항은 전국적으로 지속 확산되어 갔다.

그 동안 불만이 쌓인 전국의 학생 연대는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

모여 대규모 민주항쟁 시위를 벌였다. 신군부는 이를 기회로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전라남도 광주시에서도 역시 비상계엄군이 각 대학을 장악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하였다. 이에 울분한 전남대학교 학생과

비상계엄군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한 학생이

속출하자, '계엄철폐' '휴교령철폐'를 외치며 중심 대로인 금남로로

진출하였다(80. 5. 18).
 
계엄군과 공수부대원들은 시위 학생들을 향하여 총격을 가하여

죽는 학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민가나 관공서로 피신

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을 추격하던 군인들은 드디어 민간인까지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주민들은 피하는 학생

들을 감추어주고 식량을 공급하였다. 그러다가 민간인 부녀자도

사살당하기도 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광주시 외곽으로 피신하기도

하였으나, 군대는 탱크까지 동원하여 모든 도로를 차단하고 지키고

있어서 피신과정에서 체포 또는 사살당하였다.
 
이에 성난 학생들과 시민들은 합세하여 저항이 더욱 거세졌고, 일부

학생들은 도청(道廳)을 점거하고, 경찰서 등에서 총기를 탈취하여

저항하였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시가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정규군

에 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더 이상

의 피해를 막기 위해 ‘5.18 수습대책위원회’가 종교인,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었고, 시민군에게 총기를 반납할 것을 종용하여

무장을 해제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의 무자비한 학살은 계속되었다.

무고한 어린 학생, 부녀자, 시민까지 무차별 살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했기 때문에 이러한 비극의 현장은

외부에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광주 시내를 탈출한 일부

사람들에 의해 그 비극의 사실이 전해졌다. 처음에는 유언비어

(流言蜚語)처럼 전해지면서, 북한 무장 간첩이 침투하여 저지른

만행이라고 소문나기도 했으나 드디어 3일째 되는 날부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그 잔혹상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드디어

10일째 되는 5월 27일 대규모 진압군이 투입되어 도청을 탈환함

으로써 수많은 시체가 쌓인 가운데 시위는 진압되었다.



진행과정
10일 간의 시민항쟁 주요 사건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5월 17일(토)

비상계엄 전국확대. 학생운동 지도부 검속.

광주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5월 18일(일)

 전남대생 50여 명 등교 저지. "계엄해제" "휴교령 철폐" 시위.

공수부대원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학생들 금남로로 이동 시작.
 
5월 19일(월)

11여단 병력 증파.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파출소 방화.

공수부대 원들과 투석전 전개.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시위 진압 완화 건의.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학생 김영찬군이 계엄군 총에 부상.
 
5월 20일(화)

고등학교 휴교조치. 가톨릭센터 앞 남녀 30여 명이 속옷채로

구타당함.

공수 부대와 시민간의 공방전 계속.

금남로에서 200여 대의 택시 차량시위.

시위대 버스에 경찰 4명 사망.

광주MBC건물 방화. 시민 2명 사망.
 
5월 21일(수)

시외전화 두절. 시체 2구 싣고 금남로에 등장.

광주KBS건물 방화.

시위대 20사단 병력과 충돌.

공수부대원 전진 배치.

광주세무서 전소. 대형헬기 도청 도착.

시위대 장갑차 1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공수부대 사격 시작.

청년들 공수부대 집중사격으로 계속 쓰러짐.

헬기에서 도지사 시위해산 종용 방송.

시민들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시민들 탄약고에서 TNT  입수.

공수부대 빌딩 옥상에서 시위대에 조준사격.

외지에서 온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 설치.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로 철수.
 
5월 22일(목)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출혈자를 위해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도청 옥상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

수습대책위원회’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 수습안

전달.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 개최.

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박충훈(朴忠勳) 신임국무총리 '광주 치안 부재 상태'라고 방송.
 
5월 23일(금)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시민 5만여 명 도청광장 집회.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 소형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 전단 시내전역에 살포.

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에 도착.
 
5월 24일(토)

공수부대원,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 사격.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 발생.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일)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 메시지와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원

전달.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 만장일치 채택.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 등

논의.
 
5월 26일(월)

계엄군,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과 여성들 귀가시킴.

시내전화 일체 두절.
 
5월 27일(화)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애절한 가두방송.

금남로에서 시가전. 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 시민군에 무차별 사격.

계엄군, 도청과 시내전역 장악, 진압작전 종료.

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무선 방송.

공수부대, 20사단 병력에 도청 인계.

시내전화 통화 재개.

사후 처리
5·18 광주 학생-시민운동에서의 희생은 1988년 제6공화국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의하면, 사망 191명, 부상 852명이었다.

그 희생은 6·25 전쟁 이래 최대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었다.

그 후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보상, 책임자 처리 등 사후처리

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이어졌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5·18 진상 규명, 학살책임자 규명, 배후세력 규명 요구

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미국 지목, 미문화원 방화 사건

6월항쟁 폭발(1987)

6·29 민주화선언(1987)(군사독재 국민에 굴복)

제6공화국 탄생(대통령 직선제)

국회 ‘광주특별위원회’ 구성(1988). 광주청문회 실시.

광주민중항쟁을 '5·18 민주화운동'으로 규정.

책임자 처벌 요구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제정(1995).

광주 희생자에 대한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

‘5·18 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1997)

역사 교과서에 정식 명칭 사용

이상의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광주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고, 그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5·18광주민중항쟁이 민주화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어 '5·18민주화운동'으로 명명

되었다는 데에 있다.

 

 

 

 

 

영화 속의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었구나...

 

 

영화의 앞부분은 뒷부분의 비참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지만 참 웃기고 재미있다.  그 촌스럽던 시대를 웃기게 잘

표현한 것 같다. 택시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코미디언 여자가

등장하는 그 장면도 너무 웃기고 김상경의 택시운전 동료인 그

뽀글머리의 배우의 그 수다맨을 능가하는 언변도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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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이나 안성기의 바른생활틱한 말투나 행동도 뭔가 오바

스러운 재미가 있다.  김상경과 이요원이 데이트하면서 본

영화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는 너무 웃겼다. 이주일...

이주일의 영화도 보고싶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주일의 영화를

계속 보고싶었다...단순 무식한 개그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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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재미있었는데 살짝 아쉬운 것은 너무 스토리가 뻔~~했다는

것... 좀 더 독특하게 구성할 수는 없었을까?

그리고 안성기는 시민군을 지휘하면서도 계엄군과 너무나 자연스럽

게 접촉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게 좀 이해가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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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진짜 아쉬웠던 것은...

이 사건의 배경 설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당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무고한 시민이 죽어나가는

그 개인적인 장면을 강조하는 것이 물론 감정이입도 잘 되고

흥미를 끌 수도 있겠지만...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그 시대적

배경... 그러니까 왜 학생들이 518사건 이전에 들고 일어서서

시위를 하고는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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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위에 앉아있는 자는 영화에 이름만 살짝 나올뿐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근데 이해는 간다...

(이유는 굳이 쓰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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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런 소재를 영화화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용기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한 영화다.

그러니까 좋은 영화다.

사건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 여부보다

그냥 이런 소재를 다뤄줬다는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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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안 본 사이에 영화표가 상당히 이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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