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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의혹과 행동 - 에리히 프롬

by librovely 2007.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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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과 행동                        에리히 프롬          1980'      범우사

 

 

 

에리히 프롬...

얼마 전에 읽은 사랑의 기술의 내용이 너무 좋았기에 다른 저작물에

관심이 갔다...그래서 건전한 사회를 읽으려고 했는데...근데....

책이 너무 두꺼웠다...내용도 만만해 보이지 않고...그래서...

차선책으로 다소 얇은 편인 이 책을 선택했다.

 

 

의혹과 행동?

1962년에 쓴 책이다...

내용에 대해 아무 예상도 하지 않고 그냥 읽기 시작했다.

표지를 보니 대학 교재용으로 느껴지긴 했다....

 

 

내용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평균의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하여튼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대부분의 성인이면 읽을 수 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그냥 느껴지는 바가 있었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는 의미로

이 책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고 믿을뿐...

 

 

책장이 휙휙 넘어가지는 않는다. 간혹 읽은 문장을 몇 번 다시 읽는

경우도 있었다. 에리히 프롬처럼 많이 많이 공부하신 분들은 뭔가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든 내용도 참

쉽고 간단하여 너무나 다행이었다.

보통 240페이지 정도의 책이라면 하루 길면 이틀이면 읽는데...

이 책은 사실 오래 잡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4일이나 걸렸다...

시간이 많았다고 해도 하루에 독파하기는 좀 그렇다...머리가 아프..

 

 

사랑의 기술을 읽고 에리히 프롬 자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는데... 그래서 연표를 냅다 읽어댔는데...이 사람은 결혼을

두 번 했다. 두 번째 결혼은 나이가 좀 든 40대 정도의 시기였던 것

같다... 첫 번째 부인은 아마 같은 분야를 연구하던 여자인 것 같다.

두 번째 부인과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한 것 같다. 이 여자의 건강을

위해 멕시코로 가서 살기도 한다...연표 내용으로는 이 이상의 것은

알 수 없어서 좀 답답했다... 자서전이나 전기를 읽어볼까?

 

 

에리히 프롬이 인간과 사회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가 나와있는데

참 재미있다. 이웃이던 결혼 안한 젊은 여자가 홀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가 죽자 이 여자도 자살을 해버린 것을 보고는

에리히 프롬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14살 때

일어난 1차대전도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한다. 그럴만 하구나...

특히 유대인이니까...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에 대해 많이 연구한 모양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이 두 학자의 주장으로 가득차 있다...

물론 에리히 프롬의 생각으로 다소 변형되거나 심화된 내용도

있지만 생각의 바탕에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이론이 있다.

에리히 프롬의 설명으로 배우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정도로

느껴진다... 에리히 프롬은 개인 차원에서 머문 프로이트 보다는

사회 차원까지 시야가 확대된 마르크스에 더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프로이트...

인간 성격 형성의 기본 바탕을 리비도라는 성적에너지로 설명한...

대학교 때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나름 자세히 배운 기억이 있기에

이 내용은 큰 깨달음을 주지는 않았다. 그냥 성격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에 그렇구나..했을뿐...

 

 

마르크스...

마르크스도 대학 때 살짝 배우고 지나간 것 같다...

아주 사알짝~ 뭔가 표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

생산수단을 누가 갖고 있느냐로 사회 구조를 설명했던 기억이...

 

 

 

이 책을 읽고 나는 사회주의 내지는 마르크스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했음을 깨달았다...뭐 지금도 잘 모르는 것은 똑같지만.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나에게는 마르크스나 사회주의 이런

말 자체가 상당히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느낌... 뭔가 입에 올리면

안 될 그런 류의 것으로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뭐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는 건 아니다... 나는 빨갛지 않다~~ ㅎㅎㅎ 난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매우 맘에 들어한다... 다만 좀 제대로

자유 민주주의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정도...

딴 건 잘 모르고 내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하자면 경제적인 것...

너무 편중되기 보다는 올바른 경로를 통해 어느 정도는 함께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정도? 모르지... 내가 부유해지면 또 다른

소리를 해댈지...ㅡㅡ;;

 

 

정치에 대해 매우 심히 무식함을 자랑하는 나이기에 이 정도로

입을 다무는 게 스스로를 위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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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사회주의가 지향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사유재산을

금지하고 나라가 모든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그래서 오히려개인은

나라에 더욱 종속되고 나라 그러니까 기득권만 배 부를 수 있는

아주 말도 안되는 이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과거 소련이나

중국 북한 등... 뭔가 공포스런 국가의 이미지가 느껴졌고...

 

 

근데 이 책을 보니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그 사회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 마르크스의 사상이 아주 엉망으로 적용된 것이라는

점을 알게되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물질에 종속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유재산제도를 없애고 함께 일하고 함께

잘 살고 인간은 인간 본연의 모습...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서로를 사랑하고 도우려하는 그런 모습의 삶을 살자는 것...

생산수단에 얽매여 살지 않도록... 인간성을 짙게 드러내는 삶을

살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공산주의 국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어디에나 존재하겠지만...)

피지배층만 사유재산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다같이 빈곤에 허덕였고

오히려 지배층만을 놓고 볼 때는 아주 극단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아니 그걸 넘어섰지~~

뭐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비단 공산주의 국가만이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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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에리히 프롬이 하고자 하는 말은...

신기하게도 며칠 전에 읽은 생 텍쥐페리의 바람, 모래 그리고 별들

의 내용과 상통하는 면이 많았다... 신기해~~

무슨 시리즈물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생 텍쥐페리는 이야기에 녹여서 부드럽게 전달하였다면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명쾌하게

전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 근본적인 주제는 아주 유사했다...

 

 

일단 인간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무엇이든 무의식적으로 맹목적으로 아무 비판적인 기제 없이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배워야 한다는 것...

물질에 종속되지 말라는 것.

기계의 부품이 되지 말며 생산과 소비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

물질적인 발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그 선후가 뒤바뀌면 안된다는것...

인간다운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

인간성을 회복하고 풍요로운 정신을 추구하라는 것...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비슷하다...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가 아닌 인류애적인, 세계동포주의를 추구..

무사안일주의에 빠지지 말고 의미있는 모험이나 선택을 하라는 것

 

 

 

에리히 프롬이 결국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자각하는 것..

개인적 무의식과 함께 사회적 무의식을 깨달아야만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결국 에리히 프롬이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세계 평화??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가 개발된 이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무비판적이며 아무 생각없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에리히 프롬은

상당히 우려를 표한다. 소수의 조작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다수...

만약 그 소수가 그릇된 결정을 한다면 개개인의 불행한 삶을 넘어서

인류의 파멸도 남의 일이아니지 않겠느냐는 것...

 

 

프로이트가 미래에는 사회적 무의식을 건드릴 연구도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는데...문명 공동체 병리학 연구...

이런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나의 사상 중 도대체

어떤 것이 사회적 성격에 의한 잘못된 결과에 의한 것인지를

파악할 만한 여력이 없으니...

진중권이 몇 가지 책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이런 것을 연구하라고

기득권이 연구비를 많이 줄 수 있을까? 보통 사회적 무의식은

기득권의 세력 유지를 위한 내용을 의미한다는데... 으음....

 

 

어쨌든...

인간 대 인간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 공동체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상당히 공감되었다. 편을 가르기 보다는

인간성이라는 유사점이 훨씬 큰 같은 종으로서의 받아들임...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경례 문구가 바뀐 것도 이런 맥락이겠지?)

이런 것을 막는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책에서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물질지상주의가 아닐까? 대부분의 다툼의 원인은 대외적으로는

거창한 명분이 있겠지만 결국 그 속은 다 돈이 문제가 아닐지...

그래서 사유재산을 금지한 사회주의를 마르크스는 주장한 거겠지만

사실 그 방법은 인간을 너무 이상화시켜서 바라본 게 아닌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었는지...

 

 

근데...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뭔가 두려움이 느껴졌다...

뭐냐면... 나의 기독교적인 생각이 흔들렸다는...

에리히 프롬은 신의 말을 어긴 아담과 하와의 불복종을 통해

인류가 이성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나를 혼란스럽게만든 것은... 바로 전쟁의 문제.

성경에는 전쟁이 있을 경우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에게 그 전쟁을

손에 붙여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하나님은 살인과 전쟁을

인정한 것일까? 뭐가 답인걸까?

 

 

뛰어난 학자가 쓴 글을 읽으면 좋은 점도 많지만 치명적인 점도

있다. 너무 논리적이기에 자꾸 무비판적으로 그의 생각을 흡수해

버린다.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주제의 글을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이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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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이 좀 딱딱할 수 있지만 에리히 프롬과 마르크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흐뭇하기도 했다...

(이들의 전체적인 삶은 모르지만 이 책의 내용만 보면...)

어쨌든 읽어볼만한 책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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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들고 다니니 누군가가 뭐 이런 책을 다 읽냐고 하면서

이런거 읽으면 사람들이 접근을 안한다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래서 나도 그냥 폼으로 들고 다녀요~ 집에서는 왕유치한 책만

읽어요~ 라고 대답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뭔가 씁쓸했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 것이 특이하다는 것...참 슬픈 일이다...

책과 담 쌓고 수십년을 살아 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ㅍㅎㅎ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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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 세계동포주의라는 예언적 비전만큼 정신을 고양시키는

아름다운 것은 없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계기가 된 것은 교사들의 전쟁에 대한 태도였다.

나의 라틴어 교사가 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수업중 즐겨 입에

올린 격언은 평화를 바라면 전쟁을 각오하라는 말 이었는데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의 소위 평화에의

관심이 진짜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나는

군비가 평화를 유지한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공인된 이데올로기와 공적 선언 따위에 대해 극도로 회의적이

되었으며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모든 것은 누가 사색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실의 관찰에 의한 사고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학설의 공통적 토양

1)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2) 인간적인 것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하나도 무관한 것은 없다.

 

 

그릇된 의식 즉 왜곡된 현실상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지만

현실과 접촉하여 그 정확한 상을 파악하면 사람은 강렬해진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진실이며 그것을

은폐하는 환상이나 이데올로기의 배후에서 현실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어떤 상황에 대한 환상을 단념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단념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프로이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두 사람 다 인간을 환상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을 눈뜨게 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했다. 
휴머니즘...

 

 

모든 사람이 공통된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성이라는 하나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방인이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르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는 전햐 다른 문화와 예술이나 신화, 드라마나 조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휴머니티와 휴머니즘의 전 개념은 모든 인간이 나누어 갖고 있는

인간성이라는 이념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개개의 인간성의 나타남과 혼동하는 과오에 빠지지 않았다.

1)보편적 인간성

2)각각의 역사적 시기에 한정된 인간성

 

 

프로이트

문명이 발전됨에 따라 인간은 승화의 도를 높이는데

인간 본래의 육욕 충동은 더욱더 욕구불만을 증대시킨다.

지식과 교양을 늘리는 한편 어떤 의미에서 원시인보다 불행해지고

지나친 욕구불만의 소산인 신경증에 걸리기 쉽게 된다.

 

 

마르크스 역사의 경제학설

경제적 동기만이 역사과정에서 인간 행동을 지배한다고 오해받음...

사적 유물론은 결코 심리학설이 아니다. 경제는 생산양식을 말한다

생산수단이 인간의 생활습관과 방식을 지배하고 생활습관이 인간의

사상이나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몽테스키외 - 관습이 인간을 만든다

 

 

마르크스는 소유하고 사용하고 싶다는 욕구에 지배되는 인간은

불구화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이며 거기에는 이윤과 사유재산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자유

로운 개화가 인간의 주요 목적이다.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인간이

아니라 풍부한 인간이야말로 완전히 성숙한 진정으로 인간적인

인간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소외란...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의 주체로서 즉 생각하고 느끼며 사랑하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체험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사물을 속에서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다.(헤겔에 의해 제기된 것)

 

 

인간이 신에게 많은 것을 귀속시키면 시킬수록 더욱더 인간이

자기 자신 속에 유지하는 것은 적어진다.

 

 

경제활동을 행하면서 이득 노동 절약 절제와 같은 가치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았기 때문에 인간성의 진정한 도덕적 가치인

양심과 덕 따위의 부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누구나 타자 속에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내어 그를 새로운 희생으로

몰아넣고 새로운 종속으로 빠져들게 하며 새로운 양식의 쾌락으로

그리고 경제적 파멸로 유인하려 한다.

 

 

자신의 소외된 욕구의 포로가  된 인간은 정서적 육체적으로

비인간화된 존재... 자기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는 상품이

된다. 이 상품 인간은 자기와 외계를 결부시키는 방법을 단 하나

밖에 모른다. 즉 소유하고 소비하는 일이다.

 

 

당신이 적게 존재할수록 자신의 생명을 적게 표현할수록

당신은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소외된 생명은 더욱 커지며

당신의 소외된 존재를 더 많이 저장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죽는 것이 낫다는 깊은 사랑에 빠진 남자..

깊이 사랑함에도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갈등을 일으킬 요구를

왜 철회하지 않는 것일까? 그는 자기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토록 사랑한다는 여성의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를 나타내려

하지 않는 이유는 무슨 까닭일까?

이 상태는 일종의 소외... 그 남자는 적극적으로 사랑할 능력을

가진 적도 없으며 자신의 자아라는 마술적 권내를 벗어난 적도

또 다른 인간과 접하고 하나가 될 수 있던 적도 없는 것이다.

그 여자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한 동경을 옮겨 심었을 뿐이었는데

스스로 사랑을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잃은 것은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기에 그는 공허하고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린 느낌을 갖는 것이다.

 

 

개인의 신경증의 경우 환경과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런 배경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사회적 신경증... 공동체에 치료를 강요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언젠가는 문명 공동체의 병리학 연구를 기도하는

사람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고 프로이트는 쓰고 있다.

 

 

프로이트는 독립된 인간이 어머니에의 종속으로부터 자기를

해방하는 데 비해 마르크스의 독립된 인간은 자연에의 종속으로

부터 자기를 해방한다.

 

 

마르크스가 의미하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은 동시에 활동하고

관계를 맺으며 생산하는 인간이다.

 

 

괴테

인간은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도밖에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서만 세계를 알며 세계 속에 있음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자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대상을

정말로 인식하면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새로운 기관이 열려지게된다

파우스트에서...'영원히 노력하는 인간' 이라는 개념과 상통

 

 

마르크스

대상에 대해 정력적으로 노력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힘

인간 자신의 힘은 세계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만 발전 가능

 

 

예술을 즐기고자 하면 예술적 교양을 쌓은 인간이 아니면 안 되며

다른 인간에게 감화를 주고자 하면 실제로 타자를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 넣는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

인간이나 자연에 대한 관계는 의지의 대상이 되는 것에 따라 생겨난

당신의 현실적 생명에 특유한 표현이어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의 역동적 성격 개념

행동의 특징과 성격의 특징을 비교하는 게 편리하다.

발자크 - 성격의 연구는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힘을 다루는 것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격 정향은 인간 행위와 이념의 원천이 되는 것

 

 

사회적 성격

일정한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에너지가 같은 방향으로

향해지며 그들의 동기가 같은 것으로 될 뿐만 아니라 같은 이념과

이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사회 경제 구조에 의지한 이념의 예

봉건계급에 의해 가해진 제한에 대항하여 싸우던 중산계급에게

있어서 자유가 최고 이념

개인의 자주성은 경쟁이 심한 19세기 자본주의의 이상

팀워크와 인간관계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이상

 

 

사회적 성격이 있는 곳에는 항상 사회적 무의식이 존재한다.

사회적 무의식이란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함께 억압당하고 있는

분야를 가리킨다. 이 공통된 억압요소는 특수한 모순을 지닌 사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의식되어서는 안 될 내용을 말한다.

 

 

사실의 억압 그리고 또 하나의 억압은 정서적 도덕적 중요성이

억압되는 형...이를테면 전쟁에서 아군에 의해 저질러진 잔학행위는

유감스럽긴 하지만 부득이한 이유에 의한 것으로 느껴진다.

 

 

프로이트 사상의 중심은 인간의 주체성이 사실은 객관적 요인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환상을 갖기 위해 인간은 합리화를 발명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그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힘 자체를 자각함

으로써 자유의 영역을 확대하고 무의식의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무력한 꼭둑각시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기를 변형시켜야 한다

고 생각했다. 이드가 있는 곳에 자아도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스피노자와 마르크스에게 있어 인생의 목적은 굴레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일이었다.

 

 

언어는 단어나 문장 문법 또는 그 속에 갇혀진 정신에 의해 어떤

체험이 지각되는가를 결정한다.

 

 

노자

진실한 말은 모순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자

하나인 것은 하나이다. 하나가 아닌 것도 역시 하나이다.

 

 

언어와 논리는 일정한 체험을 자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불가능

하게 하는 사회적 필터의 일부분인데 이 필터에는 가장 중요한

제3의 역할이 있다. 이 필터는 사회적 터부에 의해 형성되고

있으며 일정한 이념이나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여 의식의

수준에 도달하는 일조차 방지하려는 것이다.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데 잉여 농산물 보관을 위해 수백만달러 소비

문명을 파괴할 무기를 위해 국가 예산의 절반을 소비

도덕을 가르치며 동시에 성공을 위해 그와 정반대되는 일을 익히게 하는 것

풍요 속에 살면서 기쁨을 갖지 못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구적 생활양식의 불합리성과 허위 모순에 대해 몇 페이지는

쓸 수가 있다.

 

 

사실의 자각을 억압하면 수많은 허구를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부모 학교 교회 영화 텔레비젼 신문 등으로부터 이데올로기를

주입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 고찰하고 관찰한 것처럼

생각해 버린다. 이것을 세뇌 혹은 교화 프로파갠더로 부르고

우리들의 경우 교육 보도라고 말한다.

 

 

왜 사람들은 자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억압하는가?

의심할 것도 없이 주요 이유는 공포이다.

추방에 대한 공포

동일성 상실에 대한 공포

 

 

사회가 인간적이면 인간적일수록 개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느냐

아니면 인간성으로부터 고립되느냐를 선택할 필요성이 적어진다.

자기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은 그 사람이 어느만큼 자신이

속하는 사회의 한계를 초월하여 세계 시민이 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주의와 외국인 혐오는 인간적인 체험과 대극을 이루는 것인데

무의식을 의식화하면 그것을 바꿀 수도 있다.

 

 

양심이나 신념도 없고 거대하고 당당한 대조직 속에서 작은 대로

그 톱니바퀴가 되는 데 자랑을 느끼는 조직적 인간

이러한 사람은 의문을 품지도 않고 비판적 사고도 갖지 않으며

열정적 흥미도 나타내지 않는데 그 까닭은 이런 일들이 조직의

원활한 기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건이 아니며 의문을 품는 것을 피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일 필요가 있다.

충분히 한 개인이 되고 자유인이 되어야만 한다.

 

 

염려함으로써 얻은 지식 세계 내재적 지식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욕구에 이끌린다.

치료적인 정향을 지닌 지식

 

 

이성을 수반한 흥미를 가진다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갖게 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한다.

 

 

심리학에서의 진리는 사회학에서도 진리이다.

내가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사회에 대한 나의

사고는 흐려지고 말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숱한 의문이 생겨난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유로워지고 인간성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가 하는 따위의 물음이다.

 

 

세계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충실과 변화를 구하지 않는 해석은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해석을 수반하지 않은 변화는 맹목이다.

 

 

신에 대한 신앙이 행위와 인생의 지도 이념으로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신에 대한 관심으로 생겨날 문제는 전혀

문제 삼지도 않는다.

 

 

진실을 탐구하고 환상을 타파하면 통찰과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간 자신이 변한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

 

 

생활수준은 나아졌으나 합리적 욕구는 소비기아라 부를 수 있는

강력한 충동의 창조와 그 만족으로 대치되었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최대의 생산과 최대의 소비가 목표로 되어 있다

진보의 기준은 소비 지수에 의해 나타내게 된다.

인간은 생산자 소비자로서 물건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개인주의라든지 모험주의라든지 결단을 내리거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

높은 수입보다는 퇴직 후의 생활을 보장하는 안전한 직업을 구하고

일찍 결혼하여 부모의 가정이라는 안전지대에서 결혼이라는 안전

지대로 곧바로 옮겨가려고 한다.

 

 

인간의 역사는 불복종의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불복종은 인간의 진화를 가능케 했다.

 

 

괴테

편견을 갖지 않은 인간을 위한 조국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한다.

 

 

국가와 그 주권은 개인을 복종시키는 새로운 우상이 되었다.

 

 

하나의 세계란 세계 시민권에 의한 새로운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하나의 싸움터로 화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세계이다.

현대인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인류에 대해서가 아니라 주권국가에

대해서 충실하다.

 

 

자기 자신을 충분히 체험하면 다른 인간 존재와 자신이 똑같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 선택을 행하지 않고 성장하지도 않으면 필연적으로

파괴적으로 되며 산 시체가 된다.

 

 

우리의 생애에 맡겨진 임무는 자기 개성을 자각함과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여 보편적 체험에 이른다는 실로 역설적인 것이다.

충분히 발달된 개성적 자아가 될 때 비로소 나를 포기할 수 있는 것

 

 

진실을 인식하는 것은 본래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의 문제이다

그 가장 중대한 요인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권력의 명령과 대중의 의견에 복종하지 않고 잠드는 것을 중지하고

인간이 되어 각성함으로써 절망감과 공허감을 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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