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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 에리히 프롬

by librovely 2007.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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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에리히 프롬      1988'     홍신문화사

 

에리히 프롬...
나는 에리히 프롬이 좋다.

사랑의 기술도 내용이 좋았고 의혹과 행동도... 소유냐 존재냐도...
그의 기본 바탕은 인도주의? 하여튼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보이는 글들이기에... 인간과 세상에 대해 사색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지식인이 느껴야 했던 안타까움이 그의 글을 보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 삶도 그가 상당히 안타깝게 여겼던 그런 삶 이었기에 에리히
프롬의 글들이 많이 와 닿았고 읽어나가는 동안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좀 과장하자면...아니 정말로 이 책을 읽으
면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쨌든 뭔가 자유로워진
느낌 혹은 인간다워진 느낌이 들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 책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이 두 가지 기본 틀로 일상의
다양한 면을 조명해준다. 그의 말을 대부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30여년 전의 책 이지만 오히려 요즘 시대에 더욱 알맞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사람들은 너무나 소유적이다...소비적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유하고 소비
하는 욕망과 행위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소유의 방법으로는
절대 만족함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욕망에 끝은 없는 것이니...
그리고 책의 서두에서 꽃을 갖고 설명하듯이 소유는 어느면에서
폭력성 혹은 배척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내 것...독점..구속...

하지만 소유양식이 아닌 존재양식으로 살아간다면 인간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소유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느끼며 삶의 과정 그 자체 안에서 인간 내부의 힘을
기르며 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신을 찾기 보다는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에
급급하여 자기가 누구인지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사는 불행을
자초한다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양식의 결과는 인간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물질만이 있고 나는 없는...나 자신
마저도 상품으로 대치시켜 버린다는데...어학 실력으로 인해
과장하자면 자아를 잃어버린듯한... 나의 쓸모없음을 몸소 체험한
오늘의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존재방식으로 삶을 살아라...라는 말을 들려주기 위해 쉽고 체계적
으로 글을 쓰여져 있다... 제목은 좀 난이도 있게 느껴지지만 정작
읽어보면 뭐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니다...오히려 앞과 중간 부분은
워낙 우리의 일상적인 면을 건드려주기에 재밌고 쉬운 느낌마저
든다... 사실 뒷부분...그러니까 종교,사회,역사 그리고 이 사회가
변하려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부분은 아직 이기적인 시야에서
뒹굴고 있는 나에게는 살짝 아주 사알짝 덜 재미있었다...

에리히 프롬은 개인의 삶의 방식에서 나아가 사회의 변화까지
생각하였다. 그래서 뒷부분에 사회가 변하려면 이렇게 이렇게
하자는 내용이 나와있는데... 사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에리히 프롬 귀여우세요...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내가 느끼기에 에리히 프롬의 제안이 제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았기에... 나같은 인간이 가장 문제인지도 모른다...
나라도 변해야지가 아니라 그게 뭐 되기나 하겠어~의 비아냥 인생.

유명한 만큼 의미있는 내용들로 가득찬 필독서라고 생각된다.
의외로 이런 책들이 사실 읽어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용은 물론 스스로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인생관을
그리고 더 나아가 삶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고...
항상 이런 좋은 책을 읽게되면 드는 생각이 진작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이다.

아무 생각없이 물론 지금도 그다지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건 아니
지만 어쨌든 가장 기본적인 질문도 떠올리지 않고 살아온 수십년
삶이 참 안타깝다... 그리고 저자가 지적한 그 소유양식으로 점철된
나의 사고방식도 매우 안타깝다...바뀌어야 함을 인식했다는 정도
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겠다... 바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가 말한 존재양식으로의 삶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쉽지 않게
느껴진다...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좀 극복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들고...
주변에 존재양식으로 사는 사람이 누가 있지?
그런 사람과가깝게 지내면 변하기 쉽지 않을까?
몇 안되는 친구들을 떠올보니 신기하게도 소유 혹은 존재 양식
으로 나뉜다...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지만 에리히 프롬
이 말한 이 분류법이 여실히 적용되는 걸... 나는 정말 소유양식으로
살아온 걸까? 남들이 보기에 나는 어떤 종류??로 보일까?

남들 눈을 나름 의식하고 모험 혹은 정말 원하는 삶보다는 안정...
실패가 없는 방향으로만 인생을 끌고 다닌 면이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죄(?)로 요즘 자꾸 내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지는 걸까? 아니 내가 대강 살아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그 기본 생계를 보장해 주는 사회적인 제도가
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선택했을까?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그럴경우 생존과 상관없는 선택이라서
더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아갈지도...

인간은 기쁨을 느끼기 위해 살아간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언제 가장 기쁜가... 이런 기본적인 것도 생각을 안해보고 사는
나의 무미건조한 삶이 불쌍하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자기답게
행복하게 사는 세상...그게 맞는 거 같은데 왜 세상은 점점 거꾸로
가는 것일까...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도 사실 가소롭다...

오늘 읽기 시작한 또 다른 책...타인의 고통...
이 책도 인도주의적인 관점의 책이다... 이런 책은 읽으면서도
읽고 있는 내 자신이 가식적으로 느껴진다...내가 먹고 입고 누릴
것으로 가득찬 머리로 이런 책을 읽다니...과장하자면 자신이
역겨울 지경이다... 사실 요즘? 블로그에 올리는 글에 살짝 살짝
나 자신의 다소 추접스럽고 구차한 모습을 드러내는데..그 이유는
블로그에 올리는 양서의 이미지와 나의 이미지가 부조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식...거짓말하는 느낌...ㅡㅡ;;

글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간다....
어쨌든 확실한 건 이 책은좋은 책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인가를 생각 하는 것이다.     _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당신의 존재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표현하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당신은 더욱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욱 소외된다.        _ 칼 마르크스

 

한 쪽에는 일관 작업의 벨트컨베이어와 관료적인 일과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텔레비젼,자동차,**가 있어서 이 모순적 조합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불행한 사람들의 사회이다.
고독하고 불안하고 기가죽고 파괴적이며 의타적인 사람들
그렇게 아끼려고 애쓰는 시간을 한 쪽에서는 마구 허송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일반 대중도 자기들의 개인적 일에 너무 이기적으로 관련돼 있기
때문에 개인적 영역을 벗어나는 것에는 무엇에나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서구의 여러 언어에서 명사의 사용이 점차 늘어나고 동사의 사용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
뒤 마레의 지적에 의하면...
나는 시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 ->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 나는 ~ 하겠다.
나는 불면증을 가지고 있다. -> 나는 불면증이 있다.
일종의 소유 관념에 의한 소외 현상

존재...
어떤 사람 혹은 물건의 진정한 본성, 진정한 실재를 가리키는 것

여가수동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이유에서 소비는
걱정을 없애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 더 많이 소비할 것을 요구한다.
이전의 소비가 곧 그 만족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확인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존재한다 =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및 내가 소비하는 것

 

존재양식의 학습
생산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그들이 듣는 것은 그들 자신의 사고 과정을 자극한다.
새로운 질문, 새로운 개념, 새로운 전망이 그들 마음속에 일어난다.
학습과정은 살아 있는 과정이다.

 

존재양식의 인간관계
아무것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신을 무장하지
않은 채 상황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반응한다. 즉 그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위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아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그들의
생각에 충실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생산적일 수 있고
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관념을 탄생시킨다.

 

대화에 있어서 진리인 것은 독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이다.

 

이른바 우수한 학생이란 여러 철학자들이 각기 말한 것을 가장
정확하게 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이러한 종류의 특정 지식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에크하르트
모든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며 사심을 갖지 않고 벌거벗은 채
신에게로 달려가 그와 접하고 그를 끌어 안는 것이다.

 

프로이트
자각의 개념은 무의식적인 현실을 깨닫기 위한 환상의 파괴

 

존재의 양식에서 지식은 더 깊이 아는 것
소유의 양식에서 지식은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

 

우상이란 우리 자신이 만들고 우리 자신의 힘을 투영시켜서 우리
자신을 약화시키는 하나의 사물이다.
일단 신이 우상화되면 신의 특성은 소외된 정치적 교의와
마찬가지로 나 개인의 경험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존재의 양식에서 신념은 우선 어떤 관념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내적 지향, 즉 하나의 태도이다.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의 부정,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신의 부정으로서의 하나님이다. 신의 개념은 애초부터
그 자신을 초월하고 있다. 신은 이름을 가져서는 안된다. 즉 신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미지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결혼이라는 계약은 각자에게 상대방의 육체 감정 및 관심의 독점적
소유를 인정한다. 사랑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즉 하나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더이상 상대방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사랑스러우려고 노력하거나 사랑을 연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권태를 느끼게 되며, 그로 인해
그들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안식일 제도의 핵심

그것은 인간들 사이의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완전한 조화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의 휴식이다.

 

 

안식일에는 개인은 그가 마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생활하며 기도하고 공부하고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사랑을 하는

등 존재 즉 자기의 본질적인 힘만을 표현한다.

 

 

인간은 안식일에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우리는 때때로 인간은 자아를 위해서도 진리를 위해서도 신을 위해

서도 살지 않는 것처럼 살아야만 한다고 말해 왔다. 이 빈곤에 도달

하려는 사람은 자기가 자신을 위해서도 신을 위해서도 살지 않았

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한다.

 

 

능동적이고 활발한 사람은 가득 참에 따라 늘어나므로 결코 가득

채워지지 않는 그릇과 같다.

 

 

각자의 몫이 다른 사람의 몫과 아주 똑같아야 한다는 의미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 역시 강한 소유지향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존재양식은 그 전제조건으로 독립, 자유, 그리고 비판적 이성을

갖는다. 그 기본적인 특성은 능동적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내적 활동

인간의 힘의 생산적 사용이라는 의미에서 능동성이다.

자신을 새롭게 하고 성장하는 것, 흘러 넘치는 것, 사랑하는 것,

에고의 감옥을 빠져 나가는 것, 관심을 갖는 것, 참가하는 것, 주는 것

 

 

현대적 의미의 능동은 능동과 단순한 분주함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것이 소외된 행동이냐 소외되지 않는 행동이냐의 두 가지 능동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탐욕 야망 등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실상은 일종의 정신이상의

형태이다.  _ 스피노자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억압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을 의식한다면 사는 것이 너무 힘들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그럴 경우 사는 것이 너무 위험해질

지도 모르기 떄문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 안에서

전세계를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일체화에 대한 욕망은 이상이나 확신에 기초를 둔

단결이라는 가장 고귀한 행동으로도 나타나지만 사디슴이나 파괴

같은 저열한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인간은 죽음보다도 버림받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새로운 발걸음은 늘 실패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자유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라는 이유로 우리 자신은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머무른다.

 

 

소유 지향의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을 갖기를

원한다. 대체로 소유 관계는 답답하고 부담스러우며 갈등과 질투로

가득 차게 된다.

 

 

삶이란 기쁨을 가져온다.   _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우리는 현재 기쁨 없는 쾌락의 세계에 살고 있다.

기쁨 없는 쾌락은 절정 경험 후에 슬픔이 따른다.

그의 내부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체계인 소유양식에서는 죄는 불복종이며 참회-징벌-

새로운 굴종에 의해 극복된다.

존재양식, 즉 비권위적인 체계에서는 죄는 해소되지 않는 소원함

이며 이것은 이성과 사랑의 충분한 개화로 하나가 됨으로써 극복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법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에피쿠로스가 말했다.

왜냐하면 죽음이 닥쳐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위에 휴머니티가 존재한다 _ 괴테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하다

 _ 캐벨(1차대전 때 병사 탈주를 돕다가 걸려 처형된 영국 간호원)

 

 

인간 자신을 상품으로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사용가치로서가 아닌

교환 가치로 보는 경험... 시장적 성격

인간의 존재는 퍼스낼리티 시장에 내던져진 상품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자신을 잘 팔 수 있는가

얼마나 자신의 퍼스낼리티를 사람들에게 잘 알리는가

얼마나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는가

다시 말해서 자신이 쾌활한 건전한 의욕적인 믿음직한 야심에 찬

인간인지 아닌지. 나아가서 가정적 배경은 어떠하며 어떤 사교 클럽

에 속해 있는가

어떤 일에 적절한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다른 많은 사람과 경쟁하려면 자신의 퍼스낼리티를 적응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오

시장적 성격 구조를 사진 사람은 단지 최대의 능률을 가지고 사물을

움직이고 일하는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왜 그렇게 바삐 움직여야 하는가

왜 최대의 능률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가

 

 

그들은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은 왜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다.

 

 

역사의 목적은 인간이 권력이나 사치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이해하고 지혜를 가꾸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적 힘의 개발

즉 진정한 자유의 영역

자유의 영역은 결핍의 영역이 그 기초가 되어야만 비로소 번창할

수 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그 근본적인 전제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우리가 문화적으로 자기 파괴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은 누가 보기

에도 명백하다. 인간성 상실의 위험 속에 있는 부자유하고 산만하고

불완전한...

사회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가 커져서 그는 스스로의 정신적인 생활

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이 속해 있는 집단으로 인도되기 때문에 사유의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인간의 성격이 소유양식에서 존재양식 우위로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만이 우리를 심리적 경제적 파국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가정

한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1.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

2.우리는 불행의 원인을 인식하고 있다

3.우리는 우리의 불행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우리는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정한 생활규범을 따라야

하며 현재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기능은 병적이고 쓸데없는 소비에 반대되는

건전한 소비의 규범을 확립하는 것이다.

 

 

진정한 신조의 형성에는 타당한 정보와 자신의 결정이 영향력을

가진다는 인식이 전제 조건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 사회의 대부분의 불행은 연간 수입을

보장해 줌으로써 없어질 것이다.

이 생각의 요지는 모든 인간이 그가 일을 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주거를 소유할 절대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이러한 원리를 거의 받아들였다.

 

 

역자의 말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데 자상한 지침이 되기를 바란다.

 


 ★★★★★